허승철 저서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를 참조하여 여행 예비 지식을 정리햇다.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
코카서스 3국의 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186,100km²(조지아 69,700 km² , 아르메니아 29,743 km² , 아제르바이잔 86,600 km² )이다. 코카서스 3국의 인구는 1,761만 명(조지아 472만 명, 아르메니아 301만 명, 아제르바이잔 989만 명)으로 한 나라라고 해도 면적과 인구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지역이다. 지역의 동서가 카스피해와 흑해에 닿아있고, 북쪽은 코카서스 산맥이 둘러서 막혀있고, 남쪽은 거대 제국인 이란과 튀르키예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유럽의 변방에 속하는 대륙의 섬같은 지역이다. 세부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에 연해 있고, 조지아는 흑해에 연해 있고, 아르메니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서 그 서러움이 크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기원전부터 로마, 비잔틴, 페르시아, 아랍, 오스만튀르크, 러시아의 수많은 침입과 압제를 받아온 소국들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문화를 유지해 오다가 소련 붕괴 시기에 함께 국가 독립을 쟁취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인류의 조상들이 살던 곳
남코카서스 지역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해 살았던 지역이다. 호모사피엔스 이전 원인류의 정착 흔적과 고대 문명의 문화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인류 유골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인 호모 조지아티쿠스(Homo georgiaticus)라고 이름이 붙여진 약 180만 년 전의 두개골이 남부 조지아의 드마니시(Dmanisi) 지역에서 발굴되었다. 카라바흐(Karabakh) 지역의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턱뼈는 30만 년 전 이전 것으로 추정되었다. 기원전 6000년 전에는 와인 제조법을 보유하고 석기 문화가 발달했다. 바쿠 남쪽의 고부스탄(Gobustan)에는 4천년 이상 된 암각화가 있다.
코카시안 (Caucasian)
코케이지언(Caucasian)은 인종적으로 백인을 일컽는 말이다. 괴팅겐 역사학파(Göttingen School of History)였던 19세기 독일의 고고학자 블루멘바흐(Blumenbach)는 인류를 Caucasoid, Mongoloid, Negroid 세 인종으로 나누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Caucasiod는 아프리카를 출발한 원인류가 중동을 거쳐 자연환경이 좋은 조지아 지역에 거주하다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백인의 조상이 되었다.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유럽 백인들의 조상임에도 불구하고 코카서스 3국은 아시아로 분류된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자신들이 유럽으로 분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히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경우 문화가 남유럽 및 동유럽과 상당히 흡사하다.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 Tiger Woods )는 1/4은 태국인, 1/4은 중국인, 1/4은 백인, 1/8은 흑인, 1/8은 아메리카 인디안의 혈통을 타고 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인종적 분류로 "Cablinasian" 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였다. 이 말은 Caucasian, Black, American Indian, and Asian의 복합 조합한 것이다. 그의 부친은 백인( Caucasian), 중국인( Chinese ), 인디안( American Indian )의 피가 섞인 흑인( African American)이었고, 그의 모친은 타이, 중국, 네덜란드의 피가 섞인 아시아인이었다. Caucasian은 백인을 지칭하는 대표 용어이다.
불의 나라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인류는 불을 사용할 줄 알게되면서 문명을 일으켜서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불을 인간에게 처음 전해 준 신이 프로메테우스다.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를 오케아노스 강 끝의 카우카소스(카즈베크 봉) 산 정상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놓고, 매일 독수리가 날아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먹도록 하고, 밤이 되면 간이 다시 자라나는 형벌을 받게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리스에서 카우카소스로 부른 산이 바로 조지아의 카즈베크 산이다. 어떤 전설에서는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자, 헤라클레스의 위업을 기뻐한 제우스가 마침내 프로메테우스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고 한다.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조로아스터는 니체의 유명한 책 '자라트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자라투스트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BC 6세기에 이란의 예언자·종교개혁가인 자라투스트라(영어명:Zoroaster)가 창시한 종교로서 세계 최초의 일신교라는 평가도 있다. 단일신론적이면서 이원론적인 성격을 띤다. 기독교의 신관도 유일신이면서 하나님과 마귀의 이원론적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조로아스터교와 상통한다. 조르아스터교는 제사에 쓰이는 불을 성스럽게 여긴다. 이를 불을 숭배하는 것으로 여긴 중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拜火敎)’라고 불렀다.
아제르바이잔의 조로아스터교 전통은 사산 왕조가 지배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세기 아랍의 침입으로 이슬람교가 들어오기까지 조로아스터교가 아제르바이잔의 핵심적 종교였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아제르바이잔은 불을 숭배하며 스스로를 '영원한 불의 나라(아제르바이잔)'라고 불렀다.
바쿠의 아테시카 신전(The Ateshgah of Baku)은 '불의 사원 (Fire Temple of Baku)' 이라고도 불리는데 조로아스터교와 힌두교의 성지이며 17~18세기 경에 신전이 지어졌다. 신전은 꺼지지 않는 천연의 불을 간직하여 오다가 1969년에 꺼졌다. 주변 지역의 유전 개발로 석유와 가스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가스파이프를 연결하여 불을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 아제르바이잔
고대부터 이 지역에서는 자연적으로 땅에서 불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있었다. 천연가스가 지표를 타고 새어 나오면서, 불이 하늘로 타오르는 모습은 고대인들에게 마치 신의 계시처럼 보였고, 그래서 이 땅은 ‘신성한 불의 땅’으로 여겨졌다.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이라는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어인 ‘아트루파테간(Āturpātakān)’에서 유래되었다. 그 의미는 ‘불을 수호하는 땅'이다.
전설의 고향
서양의 전설과 신화에는 남코카서스가 자주 등장한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한 후 자리를 잡은 곳이 과거 아르메니아 영토였던 아라라트(Ararat) 산(현재는 터키령)이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전설에서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힌 곳이 조지아의 카즈베크 산이다.
그리스 신화의 황금 양털(The Gold Fleece)의 전설에서 용이 지키는 황금 양털이 있던 곳은 조지아의 콜키스 왕국이다.
이아손은 아버지로부터 이올코스 왕국의 왕좌를 빼앗은 삼촌 펠리아스에게 왕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펠리아스는 자신의 왕권을 상속하려면 왕권과 권위의 상징인 콜키스(Colchis) 왕국의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아손은 50명의 영웅들을 선원으로 모아 아르고(Argo) 호를 타고 현재 조지아의 서부 지역인 콜키스로 향한다. 콜키스 왕의 딸인 메디아이아는 이아손이 자신과 결혼하고 자신을 데려간다는 조건으로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획득하도록 도와준다. 이아손은 약속한 대로 메디아이아를 데리고 귀환하는데, 펠리아스 왕이 약속을 어기고 왕좌를 내놓지 않자 메디아이아는 이아손을 충동하여 펠리아스 왕을 죽이고, 두 사람은 코린토스로 도주한다. 코린토스에 도착한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버전의 전설이 존재한다. 과거 콜키스 왕국에 속했던 바투미에는 이를 상징화하는 황금 양털 동상이 서있다.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74-75)
기독교의 성지
박해와 순교로 포교에 어려움을 겪던 기독교는 로마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 선포(313년)로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보다 먼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는 아르메니아(301년)이다. 조지아는 326년에 국교로 채택했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하여 국교로 받아들이게 한 위인은 성 그레고리이고,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하여 국교로 받아들이게 한 위인은 성녀 니노로 이들 나라에서 엄청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와 조지아 정교회는 상당히 다른 종파이다. 아르메니아의 기독교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로써 프로테스탄트, 로마카톨릭, 동방정교회에 포함되지 않는 오리엔트 정교회에 속한다. 아제르바이잔의 고대 국가인 알바니아(현재의 알바니아와는 다른 나라)는 기독교 국가였으나 이슬람교의 확장과 튀르크족의 진출로 인해 점차 동화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셰키지역에 가면 역사 건축물인 알바니아 교회들을 볼 수 있다.
아르메니아
예수의 사도 중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나라로서 독자적 정교회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사도교회라고 말한다. 코르비랍수도원은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했던 성(聖)그레고리가 박해를 받아 13년간 감금됐던 곳이다. 그가 공주의 현몽(現夢)으로 왕의 병을 고쳐준 데 감동을 받은 왕이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 왕국이 됐다.
하츠카르(Khachkar)
바위산과 돌이 많은 아르메니아에는 기독교 수용 이후 돌에 새긴 십자가인 하츠카르가 곳곳에 만들어졌다. 비석 모양의 돌에 "생명의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새겨 넣은 하츠카르는 현재 아르메니아에 8만 개, 전 세계에 30만개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의 나무"는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나무인데, 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어 8세기부터 이집트, 로마, 그리스 등지의 장식에 널리 쓰였다고 한다. 5세기부터 만들어진 하츠카르는 8세기 아랍 지배 시절 비석에 살아 있는 것의 형상을 새겨넣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 때문에, 장식이 없는 비석만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최고의 하츠카르는 879년에 만들어진 가르니 신전 앞의 하츠카르이다. 노라투스 마을에는 900개의 하츠카르로 채워진 기념공원인 '하츠카르의 숲'이 있다. 허승철, <코카서스 3국 문학 산책> 에서
조지아
예수의 12사도(使徒) 중 안드레, 맛디아, 열심당원 시몬이 고대 조지아(콜키스와 이베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326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467년에는 동로마제국 관할의 안티오크 정교회(正敎會)로부터 독립교회로 인정받아 조지아 정교회가 탄생했다. 조지아는 십자가를 국기에 넣을만큼 기독교가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어서 주변의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이란 등의 이슬람 국가 속에서 기독교를 지켜 왔다.
므츠헤타에는 조지아 정교회 총본산인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이 있다.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이 성당은 예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됐을 때, 어떤 조지아인이 로마의 집행관으로부터 예수가 입고 있던 옷을 사서 귀국했다. 그러자 그의 누이가 예수의 옷을 붙들고 비탄에 잠겼다가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가 옷을 너무나 단단히 쥐고 있어서 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옷은 그녀와 함께 묻혔다. 그 후 무덤에서는 삼나무가 자라났다. 왕이 그 나무로 7개의 기둥을 만들어 새 교회의 토대로 쓰게 했다. 그런데 7번째 기둥이 공중에 솟구쳐 올라 내려오지 않았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聖) 니노가 밤새 기도하자 내려왔는데 그때부터 이 기둥에서는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액체가 흘렀다.
므츠헤타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세워진 즈바리 교회는 4세기 초 기독교가 전파된 것을 기념하여 십자형 모습으로 세워졌다. 조지아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온 성녀 니노였다. 즈바리는 조지아어로 ‘포도나무’라는 뜻이다. 이는 그녀가 포도나무로 된 십자가를 가져온 것을 기념한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기독교를 인정한 밀라노 칙령(313년)을 반포하고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동한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동방 지역에 기독교가 활발히 전파되어 아르메니아, 조지아뿐만 아니라 코카서스 알바니아(아제르바이잔의 옛 왕국)도 원시 신앙과 조로아스터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수용했다. 그러나 7세기 아랍의 등장과 튀르키예의 진출로 기독교는 이슬람교에 밀려 쇠약해졌다. 쉐키의 알바니아 교회, 바쿠의 성 그레고리 성당 등이 있다.
문자를 만들어 쓴 나라
세계에서 만든 시기와 창제자를 아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고 알고있는 나를 감짝 놀라게 한 사실은 이런 문자가 또 있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한글보다 천 년 먼저 그들의 말을 소리나는대로 문자화한 독창적 자음과 모음을 만들었다. 4세기 말 아르메니아 왕 브람샤푸흐(Vramshapuh, 재위 389-417년 )는 사제이며 뛰어난 학자인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에게 아르메니아 문자를 창안할 것을 지시했다. 4세기 국교로 인정된 기독교로 인해 성서 번역 등 문자 사용의 수요는 크게 늘어났지만 당시 사용되던 설형문자는 이에 적합하지 않았다. 마슈토츠는 당시 헬레니즘 학문의 중심지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여러 문자들을 연구하며 문자 창안 작업을 했다. 405년, 마슈투프가 36자로 된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가지고 아르메니아로 돌아왔다. 그가 창안한 문자는 바로 공식 문자로 채용되어 폭넓게 성서 번역 등에 사용되었고, 문학, 역사 분야 저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아르메니아 문자가 창안된 이후 많은 사제들, 과학자들이 그리스와 시리아 기독교 문헌을 아르메니아어로 옮기는 일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아르메니아 민족 문화의 정체성이 강화되었고, 교회는 점차적으로 아르메니아 문화, 문학, 교육에 대한 독점적 주도권을 잡았다.
조지아도 독자적으로 창제된 문자를 사용하였다. 역시 4세기 기독교가 국교로 수용되면서 성서 번역과 신앙 서적 발간을 위해 문자가 고안되었고, 이를 통하여 고전 황금시대를 꽃 피우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있었지만 상류층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19세기 기독교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성서 번역이 본격화되자 비로소 한글이 제 자리를 잡고 주류 문자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도 독일의 마틴 루터에 의하여 성서가 독일어로 번역되어 인쇄되면서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기폭제가 되었다. 기독교는 문자를 통하여 인류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었다.
말과 문자를 모두 가진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작은 나라들이지만 아르메니아와 조지아가 주변의 강대한 제국들에게 수천년 침략을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현재까지 존속하는 것도 그들에게 말과 문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디아스포라의 나라
코카서스 3국은 지정학적 이유로 여러 제국들의 세력 다툼 속에 편입되어 약탈을 피하여 또는 강제이주를 당하여 주변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된 운명을 겪어왔다. 특히 아르메니아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강제 이주와 학살을 당했다. 전쟁 당시 이들이 적국(敵國)인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학살로 희생된 인원은 100만명에 이른다. 이 대학살을 피해 많은 난민이 세계 도처로 흩어졌다. 이것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물망초(forget me not)를 國花로 정했다. 아르메니아 인구는 300만명에 불과하지만, 외국에 흩어져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대략 800만명에 달한다. 아제르바이잔도 현재 국내 인구보다 외국에 거주하는 인구가 2배 이상이다. 이들 국가들이 거쳐온 역사적 노정이 얼마나 험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코카서스 3국의 역사적 특성
아르메니아는 고대부터 국가, 민족명, 종교가 한번도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왔다. 아제르바이잔은 고대에는 선주민이 세운 알바니아라는 기독교국가가 있었지만 튀르크족이 점령하고 주변을 동화시키면서 아제르바이잔이 만들어 졌다. 조지아는 고대에 서쪽에 콜키스, 동쪽에 이베리아라는 기독교 국가가 있었는데 중세를 거쳐 여러국가로 분열을 했다가 이베리아를 중심으로 조지아가 만들어 졌습니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다양한 부족이 거주하던 남코카서스 지방에 국가 형태가 나타난 것은 기원전 5-4 세기 청동기-철기 시대이다. 그러나 중근동에서 세력을 겨루고 있던 로마와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차례로 정복하면서 초기 왕국들은 두 제국과 연합을 맺거나 가신국으로 조공을 바치며 국가를 이어 왔다.
4세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5세기 고유 문자를 창제하면서 문화적 융성기를 일시 맞았으나, 7세기 아랍 세력이 이 지역까지 북상하면서 자치권을 잃고 말았다. 조지아는 중세 시대인 12-13세기 다비트(Davit) 대왕과 타마르(Tamar) 여왕이라는 뛰어난 군주의 통치로 지역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국가가 되었으나, 몽골 침입으로 짧은 전성기는 끝났고 말았다. 이후 코카서스 3국은 티무르의 지배를 거쳐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와 오스만튀르크 사이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 근세에는 로마 제국 대신에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이 각각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두고 패권을 다투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사파비 제국의 수도 이스파한으로 강제이주당하거나 오스만 제국의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 지대로 이주하면서 아르메니아 본토의 아르메니아인 인구가 감소하고 조지아의 경우 인구 대다수가 정교회에서 수니파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이후 근대에 이르러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면서 남캅카스 지역을 점령하면서 오늘날의 아르메니아 일대에 거주하던 아제르바이잔인들을 추방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이 재정착하였으며, 조지아인들은 이슬람에서 다시 정교회로 재개종하게 되었다.
18세기 러시아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19세기 초 남코카서스 지역은 러시아에 복속된다. 러시아식 교육을 받은 민족 엘리트들은 서유럽의 민족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문예 부흥을 이끌었다.
19세기 후반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석유붐으로 바쿠는 노벨가나 로스차일드가 같은 유럽 자본가들의 투자를 받아 경제적 성장을 누렸다. 바쿠 유전은 20세기 초 세계 석유 생산의 절반을 담당할 정도로 중요한 유전이었고, 20세기 후반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이후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 견제하기 위해 1918년 캅카스 3국이었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은 서로 동맹을 맺어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이라는 공화국을 설립했다. 그러나 세 나라들은 머지 않아 각각 다시 분리되었고 1920년대에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어 1922년에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이 설립되었다가 1936년 다시 해체되어 분리되었다. 소련 시대를 거쳐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을 찾은 코카서스 3국은 각기 다른 민족국가 건설(Nation-building)의 길을 걸으며 서방과 러시아, 터키, 중동 사이에서 서로 차별되는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은 독립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gh) 문제, 나히체반(Nakhichevan) 문제를 둘러싼 분쟁들이 이어졌으며, 조지아는 이 분쟁에 대해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아제르바이잔을 간접적으로 돕기도 했는데 이는 조지아는 반러, 아르메니아는 친러였기 때문이었다. 아르메니아의 경우 내륙국인데다가 동쪽의 카스피해는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막혀있다보니 조지아를 통해야만 바다를 쓸 수 있기에 조지아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역시 카스피해가 있지만 상술했듯이 육지에 고립된 내륙해이기에 조지아를 통해 흑해의 항구를 사용하는 편이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서로 영향을 받았으나 현재는 준교전 상태에 있다.
조지아의 영웅들
현재 조지아의 동쪽 지역에 있던 이베리아는 기원전 4세기부터 등장한 기독교 국가였으며 서쪽의 콜키스와 함께 조지아의 기원이 된다. 1008년 당시 조지아 지역에 있던 모든 국가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조지아 왕국이 세워졌다.
니코 피로스마니 ( 1862–1918)
조지아의 사랑받는 화가로, '백만 송이 장미' 노래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조지아의 명품 포도주 생산지로 알려진 카게티Kakheti 지방의 작은 마을 미르자니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생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살았으며, 스스로 익힌 그림들로 뒤늦게 유명해졌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로 조지아 지폐에도 그의 초상화와 그림이 나온다.
피로스마니는 프랑스에서 온 여배우 마르가리타에 반해서 짝사랑을 하고, 전 재산과 그림을 팔아 백만 송이 장미를 사고, 그녀가 묵는 호텔 앞 광장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흠모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구 소련의 Andrei Voznesensky가 '백만 송이 장미'라는 가사를 써서 라트비아 작곡가 Raimonds Pauls의 곡에 붙여 1882년 러시아 가수 푸가체바가 불러 대히트를 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수봉 가수가 불러 히트한 노래다.







이상 위키피디아에서 옮김
쇼타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 1160-1220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는 조지아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 <호랑이 가죽을 두른 용사>를 남겼다. 이 작품은 기독교 정신뿐만 아니라 애국주의, 개인의 자유, 사상과 감정의 자유 등을 표현했다. 판본에 따라 4행시 로 구성된 1,576 - 1,669절로 구성되었고, 각 행은 4음절의 4개 단어로 16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각 행의 각운과 리듬의 형식적, 운율적 완성도도 매우 높다. 이 작품은 2013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채택되었다.
바흐탕 고르가살리왕
트빌리시의 메테키교회 앞에 바흐탕 고르가살리왕의 기마 동상이 쿠라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5세기경, 바흐탕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와 기독교를 진흥하며 조지아의 교회를 당시 동로마 관할의 안디옥 교구에서 독립하여 조지아 독자적 교구를 설립하고 총대주교를 임명했다. 그는 트빌리시에서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온천을 발견하고 이곳에 도시를 세웠다는 전설도 있다.
다비트(Davit) 대왕과 타마르(Tamar) 여왕
12-13세기 다비트(Davit) 대왕과 타마르(Tamar) 여왕이라는 뛰어난 군주의 통치로 지역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국가가 되었으나, 몽골 침입으로 짧은 전성기는 끝났고 말았다. 이 시대는 조지아 고전 문화의 황금기였다. 다비드 대왕은 수도를 쿠타이시에서 트빌리시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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