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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ENGLAND

위니페소키 Winnipesaukee

산 구경을 실컷 했으니 이번엔 바다같이 너른 호수 구경을 떠난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호수지대에 숙소를 잡기 위하여 길을 재촉하며 달렸다. 47마일 약 80분을 남쪽으로 달려 위니페소키 호수 남쪽 라코니아에 이르러 이집 저집 기웃거리다 쓸 만한 숙소를 길포드에 잡았다.

 

일단 숙소를 정해놓고 날이 어둑해지는 가운데 숙소 근처 호수변 공원을 찾아가서 광활한 호수의 노을을 감상했다. 호수가 너무 커서 호수 끝 수평선에 일직선으로 가느다랗게 이어진 산들의 검은 띠가 호수와 하늘을 나누고 검은 구름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더니 곧 붉은 색조는 사라지고 검은색들 끼리 명암을 나누어 영역의 정체를 어슴프레 나타낸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는데 고교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엉성한 낚시대를 들고 나오더니 호수로 흘러드는 냇가에서 낚시질을 시작한다. 무슨 고기를 잡느냐니까 송어가 저녁에 잘 잡히기 때문에 지금 나왔다고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우리는 늘 갈 길이 바뻐 일어나면 길을 떠나느라 요금에 포함된 시설도 이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오늘은 자쿠지 목욕을 하고 떠나기로 했다. 아침부터 아무도 없는 욕조에 물을 틀어달라고 해서 따끈한 물로 몸을 푹 녹였다. 벌써 뉴욕을 떠난지 열흘 가까이 지났다. 하루살이로 잠을 자고 눈만 뜨면 보따리를 싸서 길을 떠나는 영락없는 낙타 유목민이다. 5월14일 월요일, 오늘도 우리의 낙타 렌트카를 몰고 길을 떠난다.

 

위니페소키(Winnipesaukee)호수를 감상하기 위하여 호수지대를 찾았다. 이 호수지대도 화이트 산악 국유림의 일부다. 이 호수의 이름은 인디언들이 명명한 것인데 ‘위대한 영혼의 미소 (Smile of the Great Spirit)' 라는 뜻이다. 뉴잉글랜드 지방은 긴 대서양 바닷가에 톱날처럼 들락거리는 해안선이 길게 늘어선데다, 내륙에는 강과 호수가 풍부해서 어느 마을을 가나 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정말 맑은 물이 풍부하고 깨끗하다. 내륙 지방인 뉴햄프셔주인데도 어찌나 호수가 많은지 총 수변 길이가 300km나 되고 1,300개의 호수, 300여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위니페소키 호수가 가장 커서 육안으로 그 호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며, 호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별 모양으로 들쭉날쭉해서 호수 주변으로 여러 개의 아름다운 마을이 번성하고 있다. 지도를 보아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둥근 호수가 아니라 유리판 위에 파란 물감을 뿌려서 붓으로 흩어버린 형태의 호수로서 호수 안에 섬이 있는지 섬 안에 호수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253개의 섬과 호수가 크고 작게 서로 물고 물린 모습으로 이어져 있다. 호수 일주 드라이브 거리가 101km이고, 가장 깊은 호수의 깊이는 63m이다. 위니페소키 호수는 뉴햄프셔주에서는 가장 큰 호수이지만, 뉴잉글랜드 전체에서는 뉴욕주의 샹플레인 호수와 메인주의 사슴머리 호수(Moosehead Lake)에 이어 세 번째로 밀린다.

 

게다가 위니페소키 호수는 그 둘레에 수십 개의 새끼 호수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 새끼 호수들 조차도 육안으로는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가까이 있는 큰 새끼 호수들만 꼽아보아도 북쪽의 스퀨 호수(Squam Lake), 작은 스퀨호수, 흰 오크 연못(White Oak Pond), 서쪽으로 위니스퀨 호수(Winnisquam Lake), 실버 호수(Silver Lake), 오피치 호수(Lake Opechee), 남쪽 동쪽으로도 무수히 많은 새끼 호수들이 딸려있다. 이 호수들과 93번 주간고속도로 사이에 관광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메레디스(Meredith), 웨어스(Weirs), 라코니아(Laconia), 길포드(Gilford)등의 수변도시들이다. 우리는 위키페소키 호수 남단의 앨톤(Alton)에서 서쪽 해변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며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앨톤으로 달렸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막상 호숫가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호숫가는 개인 별장들로 이어져 있어서 가는 곳마다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의 박대만 받고 물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 또 자주 보이는 팻말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롬니 지지 팻말이 곳곳에 보였다. 다른 주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정치 팻말이 이곳 뉴햄프셔주에서는 공공연하게 대문 앞에 달려 있었다. 전통적으로 뉴햄프셔주는 매우 보수적 정치색을 견지하고 있어서 진보적 색채의 이웃 버몬트주와 매사추세츠주 사람들로 부터 경멸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는 얘기가 있다. 뉴햄프셔주는 4년마다 대통령 후보 결정시 아이오와주의 코커스(당원대회)에 이어 최초의 프라이머리 선거를 실시해서 후보 선택의 시금석을 제시하는 정치일번지이기도 하다.

 

어쨌든 호숫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멋있었으나 나그네는 그 넓은 호수에 거의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넓은 호숫가가 철저하게 개인주택으로 둘려싸여 있어 집주인 외에는 호숫가로 접근은커녕 볼 수도 없었다. 보스턴 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별장이 호숫가에 지어져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관리되고 있으나 이들 부자들만의 잔치였다. 집집마다 요트 접안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아름드리 나무로 울창한 숲이 둘러쳐있고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이 달려있고 그 너머 호숫가는 드문드문 틈새로만 먼발치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절경을 식당이 점령하고 있어 문제인데, 미국은 절경을 부자들의 별장이 점령하고 있어 문제다. 차라리 우리나라는 돈내고 식당으로 들어가면 절경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데 미국은 아예 접근이 안되는 고약한 사회다. 이 문제는 이번 여행에서 가는 곳마다 부딪치는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절경지 주변을 개인에게 개발허가를 내주면 지저분한 음식점이나 숙박지로 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개발허가를 내주지 않고 썰렁하게 자연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미국은 절경지의 상당부분을 개인에게 개발하도록 하고 개인들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과 정원으로 가꾸어 놓는다. 단지 이 그림같은 절경과 가든은 초대받지 않은 외부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황량한 한국의 호수변을 보면 미국의 그림같은 집과 정원이 곁들여진 경치가 그립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과 정원으로 접근할 수 없는 미국의 절경지를 둘러볼 때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의 환경이 그리운 이중적 태도를 갖게 된다. 어쨌든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이라 호수를 기웃기웃거리다 짜증이 나서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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