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잉글랜드 여행이라더니 왜 뉴욕인가? 왜냐하면 뉴욕은 미국의 포탈 사이트이니까 이곳을 거쳐 찾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뉴욕의 심장 아니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맨해탄으로 들어왔다. 바둑판처럼 뻗은 가느다란 도로 사이에 가지각색의 건물을 빼곡히 지어놓고 그 사잇길을 무질서한듯 또 한편으론 질서있게 사람들이 무리지어 다닌다. 다니는 사람들도 질서감있는 통일된 형상과 컬러가 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별의별 제스쳐를 하며 움직인다.
어차피 거쳐 가는 도시이니까 수박 겉 핥기식으로 무작정 상경식으로 다니기로 했다. 제일 먼저 거쳐야 할 동선의 시작은 지하철이다. 지하철역이 서울과는 달리 허술한 소형 구축물 형태라 언뜻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기 십상이다.
맨해탄의 최남단 로우어 맨해탄 끝자락 역으로 향했다. 맨해탄의 동쪽을 감싸고 흐르는 이스트강과 서쪽을 감싸고 흐르는 허드슨강이 대서양과 마주 만나는 삼각주 끝단에 조성해 놓은 배터리 파크를 찾았다.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날궂이 하듯이 거닐며 가로 질러서, 스테이튼 아일랜드로 건너가는 대형 무료 여객선인 사우스 페리를 탔다. 건너다 보이는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을 사진에 담느라 부산을 떠는 사이 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선하자마자 다시 승선하는 곳으로 가서 도로 그 배를 탄다. 관광객의 목적은 건너가는 것이 아니고 오가는 사이에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탄의 빌딩들을 조감하며 사진을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너 오는 동안 바다에서 보이는 맨해탄의 마천루를 사진에 담느라 또 수선을 떨다보니 배는 다시 맨해탄에 도착했다.
배터리파크에서 다시 빌딩 숲속으로 걸어 들어오면 월가가 있다. 세계의 돈이 집중된 곳이다. 월가의 상징 황소상 앞은 비가 오는데도 기념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완전 개방돼 있던 황소상을 사방에서 철조망으로 차단하고 머리 쪽에서만 사진 촬영을 하게 했다. 차단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울각시 왈 황소의 우람한 거시기를 붙잡고 사진촬영을 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남세스러워서 차단했을 거라고 말 같지도 않은 해석을 제시했다. 황소의 역동적인 자세 어디 하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곳이 없는 명작이다. 거칠 것 없이 균형 잡힌 이목구비와 뿔은 물론이고, 등줄기와 앞다리에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근육과 골격, 결코 물러서지도 주저앉지도 않을 만큼 튼실하고 우람한 뒷다리 허벅지, 그리고 절묘한 곡선과 꺾임으로 들어 올린 꼬리의 자태가 황홀하다.
<월가의 황소상>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근육과 골격, 결코 물러서지도 주저앉지도 않을 만큼 튼실하고 우람한 뒷다리 허벅지, 그리고 절묘한 곡선과 꺾임으로 들어 올린 꼬리의 자태가 황홀하다.
볼 거도 없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도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계의 큰 돈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니 신성하게 생각할 만도 하다. 돈과 무기, 두 개의 파워로 세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한 축을 상징하고 있는 듯이 성조기가 회색 건물 열주 사이 사이에 선명하게 나부끼고 있다.
나는 이 증권시장을 볼 때 마다 가장 불합리한 거래를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대가며 하는 환상을 사고 파고 곳이라 생각한다.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대형 도박장을 차려 놓은 곳이 카지노와 증권시장이다. 노력과 관계없이 일확천금을 할 수 있고 때로는 패가망신하는 곳이다. 그런데 카지노 출입자는 별 볼 일 없는 갑남을녀라고 하고, 증권시장 출입자는 최고의 지식을 가진 지성인 투자자라고 한다. 이유는 증권시장은 노력 없이 돈을 따는 게 아니라 엄청난 두뇌작업을 통한 노력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다. 미래가치라는 환상으로 주식을 포장해서 미래가치의 보배에 배팅하라고 한다. 과연 기업의 미래가치가 현재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인가? 현재에서부터 언제일지도 모르는 미래까지 사이에는 셀 수도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여러 가지의 변수들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미래가치를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경영학, 경제학, 금융학이다. 이 불합리한 도박판을 합리적인 듯 설명하는 자들이 경영학박사, 경제학박사들이다. 미래가치란 분명히 만들어진 환상이다. 이 환상 위에 기초하여 번영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다. 언젠가는 무너질 모래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허위는 이미 국제 금융시장에서 최근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성서에서 증언하고 있다. 순수한 신앙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해 온 청교도들이 결국 이 미련한 자들의 정교한 도박장을 만들어 놓고 돈벼락의 축복을 받고 있는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월가를 보고 브로드웨이를 따라 맨해탄의 북쪽으로 발을 옮겼다. 벌써 다리가 아파서 걷기 힘들다. 이것 봐라.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여행해야 한다. 맨해탄의 주소는 단순하고 수학적이다. 아래 위로 길쭉하게 생긴 맨해탄에 가로, 세로로 반듯한 금을 그었다. 긴 세로축에 가로선을 나란히 긋고 남단부터 번호를 매겨 1번부터 263번까지 가로선으로 구획했다. 228번까지가 맨해탄에 속하고 그 위로는 브롱스에 속한다. 비교적 짧은 가로축은 고유명사를 붙여 OO애비뉴라고 부르는 세로선으로 구획했다. 주소는 가로 세로선의 교차점을 찍어서 예를 들면 ‘OO번가 OO애비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주소가 좌표다.
좌표의 발명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좌표가 있어서 공간의 구체적, 객관적 표시가 가능해졌고 모든 사람들이 그 위치를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을 비롯해서 모든 공간표시 작업은 당연히 좌표의 덕분이고, 수치의 시각화로 경제학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이 비약적 발전을 할 수 있었다.
단지 오래된 구도심 지역인 로우어 맨해탄은 좌표를 구획하기 전에 구불구불 이미 형성된 길이라선지 복잡한 곡선형 가로다. 로우어 맨해탄 북동쪽에는 이스트강을 마주보고 있는 브루클린섬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다리인 브르클린 브릿지가 명물이다. 1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브루클린 브릿지가 명물인 것은, 낡았지만 현수교의 긴 버팀줄의 선들이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리 가운데에 사람들이 도보와 자전거로 건너다닐 수 있는 목교가 있어서 건너다 보이는 마천루와 수목이 울창한 섬들을 보며 산책하고 사진찍고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자동차의 천국이지만 인간의 행보를 차단하지 않는 행정이 뉴욕을 명품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수 많은 대교들에 사람들이 자동차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편안하게 건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서울의 명품이 될 것이다. 빛의 야경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브루클린 브릿지> 1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브루클린 브릿지가 명물인 것은, 낡았지만 현수교의 긴 버팀줄의 선들이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리 가운데에 사람들이 도보와 자전거로 건너다닐 수 있는 목교가 있어서 건너다 보이는 마천루와 수목이 울창한 섬들을 보며 산책하고 사진찍고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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