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날마다 보며 감탄한 것이 잔디밭이다. 서양은 곧 잔디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던지 대지는 잔디로 덮여있다. 나는 서양의 땅에는 잔디가 저절로 자라기 때문에 저렇게 어딜 가던지 잔디가 깔려있다고 생각했었다. 이토록 풍부한 푸른 초원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목축업이 발달했다고 생각했다. 지평선이 아득한 평원은 물론 스위스 산정까지 온통 초지가 덮여있다. 잔디밭 위에 풀을 뜯고 있는 소떼의 모습을 우리는 목가적 풍경이라고 부르며 평화를 연상한다.
잔디는 모든 미학의 바탕이다. 잔디밭 위에 있는 모든 사물은 아름답고 생기가 있다. 잔디밭 위에는 단 한 그루의 나무만 서있어도 아름답고, 여러 그루가 무리지어 서있어도 아름답다. 잔디밭 위에는 노란 민들레꽃 한 송이만 피어있어도 아름답고, 100년 묵은 몇 아름드리 느릅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찌르며 서있어도 아름답다. 잔디밭에 둘러친 엉성한 나무막대 울타리는 단순한 경계나 포장이 아니고 아름다운 오브제가 된다. 잔디밭은 비워도 아름답고 채워도 아름답다. 5월의 맑은 날 경계가 보이지 않는 넓디 넓은 잔디밭에 노랗게 봉긋봉긋 피어난 민들레꽃의 군무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화려한 꽃들로 가득찬 꽃밭에 드문드문 드러나 보이는 잔디는 신선한 아름다움이다. 잔디밭에는 돌맹이 하나가 놓여있어도 의미가 되고, 작은 야외식탁과 의자가 놓여있어도 의미가 된다. 잔디로 덮여있는 마을공원에 놓인 벤치위에서 아기를 안고 담소하는 부부의 모습도 그림을 감상하듯 감동이 몰려온다. 잔디밭 언덕 아래로 이어진 호숫가에 매여있는 작은 배의 풍경은 평화 그 자체이다.
잔디밭은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아름답다. 소박한 집 옆에 붙은 손바닥 만한 잔디밭에 심어놓은 빨간 장미 한 송이만으로도 훌륭한 정원의 기품이 보인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으로 보인다. 지저분한 가축도 잔디밭 위에 올려놓으면 목가적 풍경화가 된다. 무질서도 잔디 위에 올려놓으면 질서가 된다. 탱글우드 음악공원의 넓은 잔디밭 위에 제멋대로 무리지어 앉아서 음악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자체가 질서이고, 잔디밭 위에서 펄펄 뛰며 강한 비트에 몸을 맡기고 흔들어대는 젊은이들의 몸놀림도 질서가 된다. 잔디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시각적으로는 배척하지 않는다. 잔디는 모든 시각적 존재의 친구이다. 잔디와 어울리지 못하는 물체는 없다.
잔디는 여백이면서 내용이다. 잔디는 바탕이면서 초점이다. 잔디는 스스로를 드러내면서도 은근히 남을 도드라지게 한다.
뉴잉글랜드를 돌아보면서 가장 많이 보는 모습이 잔디 깎는 모습이다. 그들이 왜 잔디 깎는 일에 목숨을 거는지에 대한 대답을 이제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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