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잉글랜드 부록

뉴욕의 식민지화

뉴욕의 식민지화

 

크롬웰로부터 정권을 탈환하여 왕정복고에 성공한 영국의 찰스2세는 신대륙에 대한 노골적인 간섭과 탐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신대륙은 대서양 연안을 따라서 북쪽(현재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지역)은 프랑스가 활발한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남쪽 즉 현재의 뉴욕 지역의 맨해튼과 허드슨 강 유역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었다. 1609년 헨리 허드슨이 이곳에 도착한 이래 강은 그의 이름을 따서 ‘허드슨 강’이라고 불렀고, 이곳의 소유권은 네덜란드에 있음을 선언했다. 맨해튼은 원주민들의 말로 ‘언덕으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뜻이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이 지역을 ‘뉴네덜란드’라고 했다.

 

1626년에는 맨해튼을 두고 원주민들과 흥정을 벌여 거래가 성사되었다. 맨해튼의 가격은 60길더(네덜란드 화폐 단위)였다. 당시 네덜란드의 시내 도로를 포장하기 위해 쓰던 돌맹이 하나 값이 1길더였으니, 맨해튼의 가격은 돌맹이 60개의 값이었다. 네덜란드의 서인도 회사는 원주민들과 모피 무역을 하기 위해서 이 지역에 교역 기지를 세우고, 맨해튼 일대를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불렀다. 회사는 원주민에게서 산 토지를 이주민들에게 분배했다.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네덜란드풍의 튼튼하고 멋진 건물이 들어찬 도시가 세워졌다. 하트포드 지역 등에도 교역의 거점을 건설해 가면서 식민지를 확대해 나갔다. 그 프랑스와 네덜란드 식민지 사이에 매사추세츠 지역을 중심으로 영국의 퓨리턴 식민지가 건설되었고, 퓨리턴 식민지 외에도 매인지역과 뉴햄프셔지역에 대한 영국 정부의 식민지 개설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뉴잉글랜드의 인구가 늘어나자 새로운 토지를 찾아 내려오기 시작하던 영국인들은 이 풍요로운 도시에 눈길을 돌렸다. 1664년 봄, 찰스2세는 프리깃함 4척과 400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뉴암스테르담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국왕은 이때 점령한 뉴암스테르담을 동생인 요크(York)공 제임스에게 하사하면서 뉴욕(New York)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후에 롱아일랜드(Long Island), 스태튼아일랜드(Staten Island), 웨스트체스터(Westchest)등 세 지역을 묶어 요크 주(Yorkshire)로 명명하면서 본격적인 식민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