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2일(토)
몇 년 전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의 자서전과 이들 부부의 저서 '조화로운 삶(Good Life)'을 읽고 나서 이들의 삶의 자세와 철학에 매료되었다. 나도 은퇴하면 이들과 같은 단순하고 의미있는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다. 특히 스콧 니어링의 죽음을 준비하는 유서는 인생을 깨끗하게 하직하는 자의 멋이라고 생각되어 나의 죽음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싶은 내용이다.
평화주의자요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였던 스콧 니어링은 아동노동을 반대하고, 반전 운동에 나섰다는 이유로 불순분자,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결국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그가 쓴 경제학 교과서와 저서들은 금서가 되어 서점에서 철수되고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일상생활 마저 영위하기가 힘들어 지자, 50대에 뉴욕의 집을 처분하여 버몬트주 산골로 들어가 철저한 생활 원칙과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면서 일용할 양식만으로 만족하며 자급자족 생활을 하였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신 분들이지만 이왕 메인주까지 온 김에 그가 살던 농장을 방문해 보고 싶었다. 그의 농장과 집은 이들 부부 사후에 공동체에 신탁되어 그들의 삶의 정신과 유기 농사법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굿 라이프 센터(Good Life Center)’라는 기관으로 관리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이 센터는 6월 중순부터 가을까지만 문을 열고 그 외의 기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센터 관리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방문해도 괜찮겠느냐고 문의했더니 자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제나 가든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전화를 미리 주고 방문하라고 답장이 왔다.
5월12일, 드디어 니어링 부부의 ‘포레스트 팜(forest farm)’을 방문하는 날이다. 농장은 메인주 거의 꼭대기 가까운 대서양 해안에 있다. 약4시간의 긴 운전을 해야 한다. 왕복 8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길이지만 꼭 가보고 싶었다. 아침 날씨가 오랜만에 화창하다. 고속도로는 토요일인데도 한산했다. 계속해서 US 1번 국도와 지방도를 타고 달리는 메인주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산과 숲과 바다와 호수와 끝없이 이어지는 잘 가꾸어진 잔디를 보며 달리는 드라이브는 짜릿하고 행복했다. 메인주의 동쪽 대서양 해안은 우리나라 동해와는 달리 해안선이 톱니같이 들쭉날쭉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서 숲과 바다가 서로 맞물리며 환상적인 경치를 펼쳐보여 주고 있다. 4시간에 걸쳐 달리는 도로가 모두 빼어난 경치를 지니고 있어 운전이 힘들기는커녕 흥미진진했다. 만약 니어링의 농장을 찾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행보였다. 아니 이 길에서 드라이브했다는 추억만으로도 오래 인상이 남을 것이다. 달리면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5월, 이제 막 깨어나는 봄을 맞이하여 누구는 연두색으로, 누구는 자주색으로 부끄럽게 새싹을 내밀며 각양각색의 봄빛으로 여는 향연을 보는 눈의 행복, 숲과 꽃이 시원하게 내뿜는 맑은 향기가 코 끝을 스치는 쾌감, 깨끗한 햇빛과 파란 하늘과 봄바람이 차창으로 넘어와 내 몸의 모든 세포와 감각기관을 열어 제치고 새봄의 희망과 설레임을 흠뻑 뿌려준다.
수도 없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즐거운 운전 끝에 메인주의 작은 마을 하버사이드에 니어링 부부가 1952년에 보금자리로 잡은 포레스트 팜에 도착했다. 대서양 쾌청한 바다를 바로 앞에서 굽어보는 언덕위에 있었다. 농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마당 건너편에 누군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 찾아가 인사를 나누자 반가이 맞아주시며 이 센타를 운영하고 있는 워렌 버코위츠(Warren Berkowiz)라고 소개를 한 뒤, 간단하게 농장 설명을 해주고, 자기가 니어링 부부의 영화를 준비할 테니 준비하는 동안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라고 한다. 살림집 한 채와 창고 한 채, 가로 세로 각 15m, 높이 1.2m의 정사각형 돌담으로 둘러친 채소밭과 거기에 붙어 있는 작은 유리온실(폭 2.7m, 길이 12m), 사과나무 몇 그루, 그리고 밭 옆에 지어놓은 UFO 같이 생긴 목조 명상센터가 전부였다. 두툼하게 쌓은 돌담으로 둘러쳐진 채소밭은 사슴이나 다람쥐 등 야생동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 춥고 바람이 많은 기후에서 작물을 보호하고, 햇볕이 돌에 축열되어 보온기능을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부부가 농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니 교육생들의 숙소와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창고에서 DVD를 틀어주었다. 니어링 부부가 생전에 일하는 모습과 육성을 담아 놓은 것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그들이 연구 개발한 유기농법을 시연하며 교육하고, 노부부가 직접 돌을 나르고 모래를 고르고 시멘트를 바르면서 즐겁게 집을 짓고,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어스 만(Orr's Cove)이 썰물로 물이 나갈 때 만의 한가운데에 운치있게 솟아있는 바윗돌에 올라 서서 대서양을 향해 헨렌 여사가 요들송을 아름답게 부르는 모습 등을 비디오에 담아 놓았다. 단 둘이서 비디오 관람을 마치고 살림채로 들어가 니어링 부부가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서재와 응접실, 부엌, 거실, 친환경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거실의 가장 큰 통창을 통해서 대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아름다웠다. 바닥은 모두 검은 판석으로 깔아 모자이크의 미감이 새로웠다.
1932년에 버몬트주의 벽촌으로 들어가서 소박한 농장을 일구며 20년 동안 살았던 니어링 부부는 그 곳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곳 메인주로 이사했다. 메인주에 처음 지었던 집과 농장도 중간에 자신들과 비슷한 인생 철학을 가진 사람에게 팔고 얼마 안 떨어진 이 땅에다 손수 돌을 날라다 튼튼한 돌집을 지었는데, 이 때 헨렌 여사의 나이가 70세, 스콧의 나이가 90세였다고 한다. 낭만적인 헨렌 여사는 돌벽 여기저기에 색깔이 다른 돌을 박아 넣어 물고기와 새의 문양도 새겨 넣었다. 유난히 길고 추운 이 지방의 겨울 동안 추위를 막아줄 수 있도록 크고 두꺼운 돌로 튼튼하게 지었다. 자연석 만을 모아서 주위에 사람 구경하기도 힘든 곳에다 70세, 90세의 노부부가 이처럼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다니 니어링 부부의 집짓기 실력은 거의 전문가의 경지에 이른 듯 하다. 집을 손수 짓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헨리 쏘로는 “시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산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 부부의 무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화장해서 이 곳 농장 구석구석과 해변가에 뿌렸다고 한다. 듣고 보니 스콧이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재를 거두어 대서양을 바라보는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 주길 바란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헬렌은 네덜란드를 매우 좋아해서 유골 재의 일부를 네덜란드로 가져가서 뿌려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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