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師表

바보 노무현

 


 

 

노무현.jpg


 

 

 

노무현1.jpg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대통령이었다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가 거듭나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택한 죽음의 방식은 자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은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해 정치적·도덕적으로 파산 상태로 만든 검찰과 '조·중·동' 등의 비대(肥大) 신문들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놀란 것은 검찰과 비대 신문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검찰 뒤에 버티고 있는 청와대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검찰의 독립적인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대한민국 검찰에 그런 기개와 강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검찰, 비대 신문들이 펼친 공동 작전은 거의 성공했다. 그들의 계획대로 유일한 근심거리이던 친노 세력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거세당했을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은 재기불능의 정치적·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청와대와 검찰, 비대 신문들은 계산을 잘못했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주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사적인 원한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이유로 전직, 그것도 직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인격을 사실상 살해했다.

설령 백보를 양보하여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윤리적 비난을 넘어선 사법 처벌을 받을 행위를 했다 해도 노 전 대통령에게 퍼부어진 정치적·윤리적·사법적 매질은 민주공화국 아니 문명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한국 사회의 주류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한 일로 자살을 결행한다는 것은 파렴치함과 뻔뻔함이 뼛속 깊이 체화된 한국 사회 주류에게는 상상 밖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주류에게는 없는 것이 노무현에게는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부끄러움을 아는 능력이었다. 적어도 노무현은 부끄러움이 무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부인이 받았고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해도 그가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느낀 부끄러움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깊고 큰 것이었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진한 회한을 담아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지만 세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로서는 자신이 이룬 정치적 업적이 모조리 훼손당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드러난 윤리적 흠결과 인격 살해에 이른 검찰과 언론의 공격은 그의 자아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철학과 가치, 정책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을 그는 즐겼고 그런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별로 없을 만큼 강했지만, 그가 지닌 윤리적 염결성은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어서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그런 대통령을 가진 적이 없다. 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하고 대한민국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든, 비정상성이 일상을 지배하게 만든 박정희가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제 동포들의 무고한 목숨을 숱하게 빼앗고 재벌 총수들을 겁박해 수천 억 원을 치부하고도 만고에 떳떳한 전두환이나, 한반도를 전쟁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만들고 외환 위기로 나라를 파산하게 만들고도 태연한 얼굴로 주제넘은 훈수를 일삼는 김영삼과 노무현을 비교하는 건 그 자체로 죄악이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능력을 측정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MB를 노무현에게 견줄 텐가.

비단 노무현은 전·현직 대통령과의 비교에서만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부동산과 펀드를 불려 줄 적임자로 MB를 선택한 국민들, 뉴타운 공약에 현혹돼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진 유권자들, 자신과 고작해야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들, 박정희교 신도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노무현에 앞설 윤리적 감수성과 도덕성을 갖춘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무현은 정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국민들이 염치를 알고 정의에 눈 뜰 수 있게 될까.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이태경 /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뉴스앤조이  2009.5.25자 에서 퍼옴)

 

데스크시선]바보 같은 시대가 바보 대통령을 살해하다
노무현 서거의 주범은 'MB 패러다임'...작은 비석 통해 바보 체온 다시 느꼈으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줄줄이 연행하고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 그리고 용산 희생자들을 죄인 취급하고 채 슬픔이 가시지 않은 유가족들을 구속하는 대한민국 공권력은 끝내 바보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돈을 받았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 돈이 대가성이 있는 뇌물인지 아닌지, 돈을 준 사람이 그로 인해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공권력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공권력은 새로 등장한 강력한 권력자가 추구하는 이른바 ‘MB 패러다임’을 앞장서 실현하는 충직한 시녀답게,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 권력의 수족들을 하나하나 잘라내었습니다. 그들에게 '잃어버린 10년'은 다시 돌이키기 힘든 수치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바보 대통령 통치기간은 자신들의 자존심에 특히 큰 상처를 준 세월이었습니다. 
‘MB 패러다임’의 특징은 바보 정권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질서를 모조리 부인하고, 자본과 건설을 지상 과제로 삼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대한민국 국토 전체에 콘크리트처럼 공고하게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이 보기에 바보 대통령이 퇴임 후 봉화마을에서 평화롭게 환경 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인터넷을 통해 현 정권의 실정을 따끔하게 꾸짖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될 월권이었습니다.
때문에 바보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차례차례 세간의 비판의 눈총을 받았으며, 마침내는 부인에 이어 본인까지 5시간 걸려 차를 타고 검찰에 출두한 후 13시간 동안이나 조사를 받는 오욕과 굴종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노무현 이라는 바보는 그들의 이 같은 조롱을 견뎌낼 만큼 두꺼운 얼굴과 딱딱한 심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독재와 인권 탄압을 서슴없이 자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얼마인지 조차 모를 만큼 부적절한 돈을 축적한 전직 대통령이 갖고 있던 비상식적인 꿋꿋함(?)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는 정의와 정직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눈물을 흘릴 줄도 알았습니다. 5공 청문회에서 서슬이 파랗게 독설을 날리던 그는 불의와 부패 앞에서 엄청나게 분노할 줄 아는 뜨거운 피가 도는 심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시대는 그 같은 바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똑똑한 시대라면 그 바보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고 필요한 존재였는지 깨달았겠지만, 이 시대는 진정으로 우둔한 바보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은 우리 모두가 꿈속으로 그리는 유토피아니즘을 구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잘못된 구태를 청산하고 공평과 상식이 지배하는 시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습니다. 그의 지극히 상식적인 평범한 노력은 이 시대를 거스른 것이었기 때문에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합니다.
그런 바보가 기적적으로 대통령이라는 지도자가 되었지만, 잠깐의 통치 기간이 끝난 후 끝내 바보를 용납지 않는 시대와 역사 앞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그 바보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없지만, 그의 무덤에 세운 작은 비석을 통해서라도 바보 노무현의 체온을 다시 느끼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스앤조이 2009.5.23자 에서 퍼옴)

 

[한승원 기고] 노前대통령의 슬픈 승부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새벽 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의 삶을 푸른 허공에 던져 마감했다. 그가 금의환향한 마을 뒷산 부엉이바위 앞의 그 허공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답답하면 그곳에 올라 꿈을 키우며 바라보곤 한 푸른 허공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잃었다. 그의 뇌물사건 폭로를 말하던 정적들까지도 충격에 휩싸인 채 옷깃을 여미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떠나간 그를 애도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준엄한 성역이고,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아성이다. 사실상,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어떤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서에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고, 삶과 죽음을 섞어 살기로 작정한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 던진 하나의 슬픈 승부수였다.

그의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그는 한 사람의 입지전적인 승부사였다. 가난 때문에 부산상고를 다닌 그는 사법고시에 승부를 걸었고, 판사로서 삶을 버린 다음에는 인권변호사로 승부를 걸었다.

삼당합당 하는 무리에 참여하면 누릴 수 있는 영달을 버리고 꼬마 민주당에 들어갔고, 출마하기만 하면 당선될 수 있는 종로구를 버리고, 바보스럽고 고집스럽게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부산 근처를 여행 중이던 나는 그의 선거사무소에 찾아가 여비를 쪼개 내놓았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는 아내와 함께 눈 어둡고 허리 굽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세 개의 표를 모아주었다.

그의 서민적인 털털함과 바보스러운 착함에 환호하는 많은 사람들의 표들로 인해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직 수행 중에 정적들에게 받은 탄핵도 사실은 승부사인 그의 바보스러운 정면승부였고, 그 승부수는 결국 제3당인 열린우리당을 거대 여당으로 만들어놓는 역반응을 몰고 왔다.

그리고 이제 뇌물로 인한 형의 옥살이, 아들과 딸의 검찰소환, 아내의 재소환, 앞으로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고통스러운 삶을 앞에 놓은 그는, 도덕적으로 사망선고받은 스스로를 허공에 던짐으로써 역사에 승부를 건 것이다.

나는 관공서의 구태의연한 권위를 허물어 놓은 것을 그의 첫째 공적으로 삼고, 남북 화해를 도모한 것을 둘째 공적으로 삼고, 국방자주권을 가져오려 한 것을 셋째 공적으로 삼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곳곳으로 행정관청들을 옮기려 한 것을 넷째 공적으로 삼는다.

어쨌거나, 그의 서거로 말미암아 지금 세상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한쪽은 박연차의 태광실업 탈세와 이와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즐기며 박수를 친 사람들이다. 다른 한쪽은 그 수사를, 전 대통령을 시정잡배처럼 희롱하다가 결국 감옥에 보내려는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인 채 봉화마을로 몰려들어 그동안 그를 궁지에 몰아 넣었던 사람들의 조문을 막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세상이 흉흉해질까 싶어 침통해 있고, 경찰은 촛불이 대대적으로 번질까 싶어 긴장하며 분향소 주위를 철통 경비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극단적으로 선택한 죽음 앞에서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 되고, 각자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너무 무책임하게 선정적으로 호들갑스러웠고, 수다스러웠고 남의 불행을 즐겼다. 자기 정파의 영달만을 위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지 않았고, 돈 앞에서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했고, 자기 자식들만 호의호식하게 하려는 탐욕과 허영에 인격과 양심을 팔았다.

부디 그의 극단적인 죽음이, 이 시대의 불행한 정치 행태에 하나의 굵은 획을 긋고, 밝고 맑고 깨끗하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삼가 그분의 명복을 빈다.

[소설가 한승원]
(매일경제신문 2009.5.25자에서 퍼옴)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30> 노무현의 '진보의 미래'


박정희 대통령이 광복 이후 보수를 대표한 정치가라면, 진보를 대표한 정치가는 누구일까. 많은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지목할 것이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여기서는 김대중이 아니라 노무현을 다루려고 한다. 그 까닭은 더없이 극적이었던 노무현의 삶과 정치가 이른바 ‘386세대’를 포함한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 있다.

2009년 노무현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그를 추모하는 칼럼을 썼다. “노무현이란 이름은 복수로 존재했다. 정책 입안가로서 노무현, 인간적 정치가로서 노무현, 그리고 시대정신으로서 노무현이 있었다. 그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적 정치가와 시대정신으로서 노무현을 새삼 일깨우게 했다.” ‘인권변호사’이자 ‘대통령’이자 ‘시대정신’이 노무현이라는 정치가의 정체성을 이뤄왔던 것으로 보인다.

2003년에서 2008년에 이르는 노무현 시대는 1987년 시작된 민주화 시대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진보 세력은 2003년 노무현정부를 출범시켰고, 2004년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하지만 시장과 공론장에선 보수 세력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다수였지만 사회적으론 소수였던 게 노무현정부가 마주한 시대적 조건이었다. 그만큼 노무현 시대에는 보수와 진보의 긴장이 내내 뜨거웠다.

◇노무현 시대의 회고

노무현은 1946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다음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 1978년 변호사를 개업하고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리자 국회의원이 됐고,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았다. 노무현의 삶에서 극적인 전환은 2002년에 주어졌다. 그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고, 12월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추구한 것은 민주화의 진전과 심화였다. 이를 위해 노무현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라는 3대 국정 목표를 내걸었다. 참여민주주의와 균형발전이 대내적 목표였다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번영은 대외적 목표였다. 구체적으로 노무현정부는 권력기관의 민주화와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모색해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생산적 결합을 추진했다. 또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 이전 등의 과감한 균형발전 정책을 통해 중앙 대 지방, 지방 대 지방의 불균형을 해소하려 했다. 나아가, 김대중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고 미국 중심 외교정책에서 동북아 중심 외교정책으로 전환하려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무현정부가 마주한 또 하나의 시대적 조건이다. 노무현 시대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와 세계화가 극적으로 교차하고, 이 둘이 충돌하는 갈등에 내내 대면해 있던 시대였다. 세계사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보수의 시대가 절정에 도달한 가운데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야 했던 게 노무현정부가 놓인 시대적 운명이었다. 이런 구조적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무현정부는 최선을 다했지만, 집권 당대에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노무현의 시대정신

‘진보의 미래’는 노무현이 대통령을 퇴임한 다음에 집필한 책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가 그 부제다. 이 책은 미완의 저작이다. 노무현은 2008년 10월 참모진과 가까운 학자들에게 진보주의 연구모임을 제안하고 비공개 연구 카페를 열었다.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올리고 이를 놓고 토론했다 ‘진보의 미래’는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다. 서문에서 노무현은 말한다.

“진보주의에 관한 책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 미래의 역사는 진보주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사회적 논쟁의 중심 자리를 차지해야 지역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의 현재에 대한 진단과 그 미래에 대한 모색이 이 책이 겨냥하는 목표다. 책의 차례를 보면 노무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직접 작성한 원고로 이뤄진 제1부는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자’,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 ‘보수의 주장, 진보의 주장’, ‘진보란 무엇인가, 보수란 무엇인가’, ‘세계는 진보의 시대로 가는가’, ‘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 이어지는 제2부는 제1부의 주제들을 생생한 육성으로 전달한다.

이 책은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정치철학을 돌아보게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이 소망한 것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였다. 그에 따르면, 격렬한 산업화를 지나오면서 비상식과 반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됐고, 그 결과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반칙으로서의 특권이 횡행하는 사회가 됐다. 5년의 국정 경험은 상식과 원칙이 존중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그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그는 말한다. 

“결국 국가의 역할에 관한 문제는 누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문제이자 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의제이다. (...) 성장과 분배, 감세와 복지를 둘러싼 논쟁, 민영화, 탈규제, 노동의 유연화, 개방, 작은 정부, 이런 논쟁이 정부의 역할에 관한 논쟁이다.”

노무현이 제시하는 진보의 일차적 과제는 새로운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의 수립에 있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의 분배인 노동영역과 정부의 분배인 복지영역에 국가가 어떻게,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가 이 과제의 핵심을 이룬다. 요컨대, 노동시장정책과 복지정책의 재구성이 진보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노무현은 주장한다.

시대정신이 한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집약이라면,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나라가 아닌 ‘함께 사는 사회’와 ‘더불어 사는 국가’를 추구한다.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사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바탕 위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라는 점을 노무현은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2009년 5월 그는 돌연 우리 곁을 떠났다.

진보의 미래. 동녘 제공
◇진보의 현재와 미래

진보란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삶과 사회를 모색하려는 사상적.정치적 기획을 통칭한다. 서구사회에서 근대 이후 진보는 17.18세기의 계몽주의와 19세기의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됐고, 20세기에 들어와선 ‘자본주의 안 개혁’을 모색한 사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밖 혁명’을 추구한 국가사회주의로 분화되고 발전해 왔다. 오늘날의 진보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미국의 진보적 자유주의, 그리고 생태주의.페미니즘의 급진 민주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진보의 역사는 담론과 정치의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담론의 측면에서 진보는 1950년대에 냉전분단체제가 공고화되면서 사실상 불허됐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박현채의 ‘민중경제론’,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이효재의 ‘분단사회학’ 등을 통해 깨어나기 시작했고, ‘사회구성체 논쟁’을 거치면서 학문적 시민권을 얻었다. 1980년대 이후 진보주의는 민족해방주의, 민중민주주의, 시민사회론 등으로 분화되면서 이론적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현실 정치의 차원에서 진보에는 중도적 경향과 급진적 경향이 공존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평화민주당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이르는 중도진보적 흐름의 변화였다. 이 흐름은 민주화 시대 초기에 중도적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선 점차 진보적 경향을 강화해 왔다. 퇴임 후 노무현이 발표한 ‘진보의 미래’는 이러한 진보적 경향의 강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무현정부 이후 진보는 두 차례 대선에서 보수에게 잇달아 패배했다.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조기 퇴진에 따른 201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21세기의 미래에서 진보에게 부여된 주요 과제는 세 가지다. 시장의 적절한 제어, 사회적 약자의 보호, 개인적 자율과 공동체적 연대의 생산적 결합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인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강조하듯, 사회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의 부단한 혁신만이 진보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우리 사회 진보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문여러분 ! 
 
만물을 소생시키며 희망의 꽃을 피우던 봄이
이 땅에 뜨거운 태양을 남기고 저만치 가고 있을 즈음에
파란만장한 정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急逝 소식을 들었습니다.
애간장을 끓게 하는 짧은 遺書를 남기고 스스로의 삶을 허공에 던져 마감했습니다. 
결정적 순간마다 홀로 걸어 갔던 그분의 마지막 슬픈 勝負手였습니다.
有存者 必有亡(유존자필유망),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지만 
극단적으로 선택한 죽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잃었습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애통하고 비통함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親盧와 反盧를 초월하여 그분을 애도하는 물결은 끝이 없었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분이 남긴 천금같은 遺書의 일부인 禪言(선언)이며 宥言(유언)입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임에도 삶을 달관하는 듯한 감정의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人生如朝露(인생여조로), 
인생은 아침해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존재라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그분의 죽음은 
삶이 영원한 것으로 錯視하는 자들의 貪慾과 盲目에 목탁을 치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 그분을 둘러싼 연민과 애증의 부피를 
훨씬 뛰어 넘는 수없이 많은 조문행렬은 遺書에 묻어 있는 상처와 고뇌 때문입니다.    
遺書의 遺는 무엇을 남기거나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분은 결코 자살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용서하며 화합하라는 통합의 전도사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구시대의 기득권세력으부터 
정의롭고 정직하여 박힌 미운털을 뽑아 내고 더 큰 지도자로 부활한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도선사 주지인 혜자스님께서 
모일간지에 서사대사의 글을 인용하여 이런 글을 寄稿하였습니다.
"태어나는 것은 허공에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은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구름 자체는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이에 혜자스님께서 덧붙이시기를 
"불교에서는 몸과 생각(識)이 생겨서 움직이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몸과 생각이 소멸함을 사(死)라고 한다. 지금 이순간도 찰라다.
몸, 생각, 주위의 모든 환경들은 생멸생사(生滅生死)하고 있다.
마치 허공의 뜬 구름이 어느때 생겨나서 
수많은 변화를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따라 덧없이 흘러 가는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매우 어둡습니다. 
회색구름 저편의 또하나의 구름을 상상하며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읽어 보는 그분의 마지막 勝負詞는 
가슴에 남아 있던 生과 死의 고뇌를 눈덩이처럼 키우고 군살로 박힙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遺言은 왜곡되어 流言으로 亂舞하지만 
깊게 흐르는 마음속 강물같은 그분의 遺言의 原文은 이렇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평소 그분은 多辯家였으므로 
위기에 처한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할 말도 많았겠지만 
이미 각오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연하고 의연하게 작성한 글을 남겼습니다.
소탈하고 잡초같은 性情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던 그분다운 슬픈 노래입니다.
그분은 일생을 사는 동안 편한 길도 있었지마는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여 외롭고 의로운 길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遺言은 살아 남은 자들에 대한 免罪符(면죄부)이며 
애비의 심정으로 철모르는 자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원망하지 말고 국민적 통합을 이루라는 회초리인 것입니다.
진실로 참회하지 않으면 안될 삶의 예방주사입니다.
물질적, 정치적 貪慾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던지는 獅子喉입니다.
 
글(書)이 곧 말(言)이라고 한다면
그분의 遺書는 이 땅의 모든 是是非非(시시비비)를 잠재워 버렸습니다.
우주보다 더 넓은 삶의 공간에 질문을 던지고 아주 작은 비석을 세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富者와 貧者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進步와 保守로 나뉜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영원한 勝者도, 영원한 敗者도 없습니다.
언제나 被告도 언제나 原告일 수도 없습니다. 
與와 野는 죽는 날까지 싸워야 하는 철천지 원수가 아닙니다.
어느 편에 서있든 亡者 앞에서는 모두가 罪人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自服하는 善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싶습니다.
국민장으로 치뤄지는 영결식에서도 
與와 野의 입장이 다르고 진보와 보수의 태도는 더욱 다른 것 같습니다.
故人의 큰 뜻을 잘 모르는 미혹한 자들은 
조문하려는 자를 내 쫓으며 분열을 획책하고 상호불신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쥐죽은듯이 조용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은 습관적으로 칼끝이 더 날카로워 질 것이고 
이에 반발하는 촛불의 풍랑은 더욱 거세어 질지도 모릅니다.
부디 그분의 슬픈 遺言을 가슴에 담고
우리 모두 자신의 돌아 보며 스스로의 遺書를 작성해 두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과연 누구를 定罪하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 남은 사람들의 예의는 슬픈 亡者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지금은 칼날을 세우며 사생결단 싸울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코앞의 북한은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사일을 마구 쏘아 올리는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맏형으로 구시대의 막내가 되겠다"던 그분은 
人命大如天(인명대여천), 
하늘과 같은 목숨을 봉화산 푸른 허공에 던지며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짊어 지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던 같습니다.
구시대의 막을 내리며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새로운 세상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분의 遺言은 기막힌 역사적인 사건으로 不滅의 詩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분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는 출구조사가 방송될 즈음에 
여러 知人들로부터 축하성 전화를 받고 있던 필자에게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궁금한 제 아들은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아빠 혹시 노사모 아니십니까?"
해프닝같은 이 질문의 근거는 
5공화국 청문회 이후, 그냥 좋아하기 시작한 그분이
서민이 주인되고 편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라는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에 탤레폰도 때리고 
몸이 불편한 시골 어머님께도 투표를 하시라 전화를 하면서
나름의 비공식 자원봉사로 그분을 지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써 국정을 펼침에 있어 
정제되지 않은 특이한 言辭와 표현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정치적 명분과 열혈추종자들의 극성에 회의를 느끼고 
그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외면하고 거리를 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꿈틀거리고 끌림이 있는 그분의 遺書를 읽고 
갑자기 죄인이 되어 달기똥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존경과 사랑에 거리를 두었던 후회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遺書 內容 中 "아주 작은 비석"이라는 글귀에 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청문회 이후의 마음으로 되돌려 그분을 가슴으로 다시 좋아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누구였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게 되고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유언 쓰는 것이 요즈음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대세라며 遺書를 써 놓기 전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遺言을 자꾸 읽어 보는 것이 정답인것 같습니다.
살아 가는 동안 언제라도 꺼낼 수 있도록 그분의 遺書를 가슴 속에 묻어 둘 것입니다.
 
단한번도 절대 절명의 승부다운 勝負史가 없었던 제게도 
오래전부터 마련해 둔 부엉이 바위는 있습니다.  
구름같은 인생길에서 勝負手를 던져야 할 때가 다가 오겠지요 
그때는 그분의 善한 遺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볼 것입니다.
焉敢生心, 그분의 숭고한 철학은 닮지 못하겠지만 
그분의 냉철한 용기만이라도 닮고 싶은 마음이 시청앞 路祭의 挽丈보다 많습니다.
몇 줄의 유서하나 남기고 홀연히 떠날 수만 있다면 ......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문행렬이 물결을 이루며 끝없이 이어 졌기에 
그분의 죽음은 死가 아니라 終이었으며 永生의 좁은 門을 통과한 것입니다.
이미 이승을 떠난 그분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토록 찬란하고 꽃피던 봄은 바보 노무현을 따라 우리곁은 떠나 갔습니다.
"아주 작은 비석"의 묘비에 새로운 봄으로 부활 하소서 !! 
불꽃같이 살다간 이땅에서의 善과 惡,
극적인 삶과 그 흔적, 이제 다 잊고 영면하소서 !!
삶과 죽음이 무경계였음을 일깨워 주고 홀연히 떠난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경호원의 거짓 시나리오였을지라도 
담배 한 모금의 유혹이 가슴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담배 한 모금 깊숙히 삼켜 
내 안에 상처와 애증의 답답한 뭔가를 토해 내고 
텅빈 가슴으로 그분의 遺言을 소(牛)처럼 되새김하기 위하여 노트북을 덮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62문 62답]


 
@ 철학
 
1.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 : 과학기술 혁신, 시장과 제도의 개혁, 문화의 개혁 또는 혁신 (품격있는 문화 형성),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새로운 지방화 구현이다.
 
2. 국가가 수행해야 할 가치: 활력있는 국가, 따뜻한 사회, 건강한 문화 또는 품위있는 문화, 안전한 사회 또는 비전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3. 국정운영을 위한 원리: 건강한 사회문화를 위해 원칙과 신뢰, 대화와 타협, 투명과 공정, 분권과 자율, 균형과 통합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개혁과 통합이다.
 
4. 리더십의 덕목: 리더십을 위한 개인의 덕목으로는 신뢰, 공정, 성실, 절제, 헌신, 책임 등 '6대 덕목'이 필요하고, 지도자는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판단력과 통찰력이 필요하며, 그 결과를 실천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5. 동북아 중심국가: 지난 수백년동안 '변방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는 국론분열과 갈등의 요인이 되었다. 새 역사를 펼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이 열리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단지 경제 발전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변방의 역사'를 극복하고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는 새 역사를 펼쳐나갈 수 있는것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지역의 질서를 주도하고 수평적으로 참여하는 '자주적인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
 
@ 인생
 
6. 본관 : 광주 노씨
 
7. 어렸을 적 꿈: 목사, 은행원, 판사
 
8. 첫 직장: '삼해공업'(어망회사)/ 부산상고 졸업전부터 교복을
입고 회사를 다녔다. (가난했기 때문에..)
 
9. 군대: 군번 51053545 / 을지부대
 
10. 연애시절: 몇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둑길을 걸으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함께 돌아다녔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 논길을 걷노라면 벼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 놓은 것만 같았다. 마치 동화 속의 세계 같은 그 속을 거닐며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11. 아내의 약한 모습 : 아내가 자존심이 강해 좀처럼 몸을 기대거나 하지 않았는데,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무릅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더라. 그 때 약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12. 결혼반지: 어머니가 해 주신 결혼반지를 고시 공부할 때 아내가 팔아 녹음기를 사 주었다. 결혼 30주년에 금반지 커플링을 사서 함께 끼고 다닌다.
 
13. 별명 : 노짱 (노사모 회원들이 부르는 별명)
노천재, 돌콩(어릴적 별명) 노변(부산의 인권변호사 시절)
 
14. 학창시절 아르바이트: 고등학교 때 초등학생 공부 가르쳐 준적도 있고, 조그마한 가게에서 야간 숙직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15. 장학금 : 전국에서 35명을 뽑는 '부일 장학금'을 받아 고등학교를 다녔다.
 
16. 사법시험 : 17회 / 세 번 낙방 후 네 번만에 합격
 
17. 결혼과 사법시험 공부: 결혼은 사법시험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쟁이 첫째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집에 건너오면 또 반겨 주는 첫째의 고사리 손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 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다.
 
18. 부끄러운 일 : 변호사를 처음할 때 계약금으로 받은 60만원을 피의자와 합의가 된 이후에도 관례라는 이유를 들어 돌려주지 않았다.
의뢰인이었던 그 아주머니는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먹고 삽니까"
하는 그 말 한마디를 내 가슴 속에 던져 놓았다.
 
19. 인권변호사가 된 이유: 부림사건을 맡고 고문당한 학생을 보았을 때, 내 아이도 이제 곧 대학생이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 컴퓨터 입문 : 1982년 처음 8비트 컴퓨터를 처음 보았고,
국내에 금성사의 '명필장원'이라는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 곧바로 컴퓨터를 구입했다. 그때부터 컴퓨터에 변론문을 저장해 놨다가 새로운 내용을 결합해 수정하곤 했다.
 
21. 정치입문 계기 : 송기인 신부의 권유로 13대 총선에 출마
 
22. 광고모델 : 154,451번째 대우자동차 서포터
대우자동차가 어려울 때 대우자동차 서포터로 광고를 찍었다.
 
23. 장기기증 : 2002년 아내와 함께 사후 장기를 기증하기로 서약을 해 국립의료원에 전달했다.
 
@기호
 
24. 주량 : 소주 반병, 맥주 1병 반 (폭탄주는 싫어함)
 
25. 좋아하는 음식: 삼게탕, 과식을 하지 않고 음식은 가리지않는다. 잡곡밥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
 
26. 애창곡 : 이정표, 작은 연인들
 
27. 기억에 남는 책 : '백범일지', '링컨 전기', 클린턴 '희망과 역사사이, '레미제라블'
 
28. 좋아하는 스포츠 : 등산, 볼링
 
29. 골프 : 핸디 20정도
 
30. 휴식방법 : 잠/10여일에 한번씩 공식 일정이 없는 오전 중에 이발을 하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하며, 재충전과 구상의 시간을 갖는다.
 
31. 건강습관: 식사를 잘 한다. 특히 지방 방문 등 바쁜 일정이 있더라도 반드시 하루 세끼의 식사를 챙기고, 외부에서 숙박하더라도 사우나와 스트레칭을 거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32. 평소 운동습관 : 요가 (하루 30분정도) / YTN을 틀어놓고 스트레칭을 한다.
 
33. 수면시간 : 6시간 / 보통 취침시간은 밤 11시에서 12시, 하루에 적어도 5~6시간은 꼭 잔다. 잠자리가 바뀌면 불편해서, 가능하면 잠은 조금 멀리 있어도 집에 가서 자려고 하는 편이다.
 
34. 기억에 남는 영화: 라이언의 딸, 엘시드, 닥터지바고,인디아나 존스,오아시스
 
35. 좋아하는 연예인: 노사연, 문성근, 이창동, 차인표, 한석규
36. 즐겨입는 옷 색깔 : 감색
37. 팬클럽: 노사모 (www.nosamo.org)
38. 가고싶은 여행지: 신혼여행을 못가서, 아내와 함께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
39. 여행해 본 나라? 영국, 일본, 캐나다
40. 입맛이 없을 때 찾아가는 음식점 : 서울 효자동에 있는
삼계탕집 '토속촌'
41. 인상깊은 드라마: '서울의 달' /허영을 부리다가 쓰러지는 한석규씨의 배역을 인상 깊게 봤다.
 
42.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도전 1000곡
43. 학창시절 보던, 기억에 남는 만화 : 칠성이, 깨막이, 라이파이, 악동이
44. 삼국지 인물 중 호감가는 인물: 관우 / 의리는 물론 능력도 있고, 또 지헤도 있는 것 같아 신뢰감이 간다.
 
45. 독서습관 : 문제가 생기면 책을 먼저 찾는 다독형이다. 컴퓨터도, 요트도 책으로 시작해 독학했다. 원리가 담긴 서적부터 시작해 응용서적까지 읽는다. 갖고 있는 책이 2,000권이 넘고 거실까지 서재로 썼다. 미래학, 사상서, 경제경영, 국가전략과 관련한 책이 많고 의외로 소설은 적다.
 
@생각
 
46. 좌우명: 자신에겐 엄하고 타인에겐 너그럽게
47. 존경하는 인물: 김구, 링컨
48. 종교: 없음 (천주교는 영세는 받음, 세례명은 유스토)
49. 외국어 능력 : 영어 (中)
50. 인터넷: 매일 자주
51. 자주가는 웹사이트
: 청와대 홈페이지 (www.president.go.kr),
연합뉴스(www.yonhapnews.co.kr)
 
52. 어려울 때 의논 상대: 아내
53. 특허: 개량독서대 / 74년 10월 출원, 75년 5월 공고, 실용신안
공고 75-466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책을 볼 수 있도록 높이와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든 독서대
 
54. 개발프로그램: '노하우 2000' 인명 종합데이타 프로그램, 1994년 개발
 
55. 저서 : 여보 나 좀 도와줘(1994), 노무현이 만난 링컨(2001), 리더십이야기(2002), 노무현,상식 혹은 희망(공저,2002)
 
56. 자격증 : 주산2급, 부기 2급
 
57. 정치가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 로비스트를 해 보고 싶다.
뒷거래 문화가 너무 팽배해 있는데, 정정당당한 로비문화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58.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부산에서 변호사 하고 있을 것이다.
59. 앞으로 쓰고 싶은 책 : 정치학 개론서
60. 최근에 읽은 책 : '대통령의 성공조건'(박세일 등 공저)
61. 어린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62. 이메일 : president@president.go.kr
 
====================================
아마도 대통령 재임시절의 문답인듯 합니다.
이제는 답멜 보내도 못...



'師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란 전 대법관  (0) 2010.10.04
앙드레 김  (0) 2010.08.13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0) 2010.06.20
법정  (0) 2010.03.12
김수환 추기경  (0) 2009.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