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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ENGLAND

탱글우드

노스아담스에서 1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서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의 경계 지점에 레녹스(Lenox)란 소도시를 찾아 갔다. 다운타운을 찾아가는 중에 마침 도로 옆 잔디광장에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란 현수막이 나부끼며 장이 섰다. 잔디밭 둘레에 하얀 텐트를 연달아 둘러치고 농장이름을 걸어놓고 여러 가지 빵을 비롯해서 버섯요리 버터 채소와 꽃 등을 팔기 시작했다. 이 조그마한 잔디광장을 가운데로 해서 반원형 출입구를 한 세익스피어 연극극장이 약간 높은 지대위에 우아하게 서있고 반대편 낮은 지대에는 번스타인 극장이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방금 개장된 시장에 진열된 음식은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다. 서서히 동네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와 음식을 시식도 하면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것 저것 둘러보며 빵 조각, 치즈 조각 등을 맛보는 재미에 빠져 돌아다니다가 푸짐한 빵을 하나 사서 바로 옆 아파트 잔디밭 야외식탁에 앉아 아침에 싸온 도시락을 꺼내 펼쳐 놓고 맛있게 먹었다.

 

 

 

 

 

 

레녹스도 전통과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지만 탱글우드 때문에 더 유명하다. 탱글우드(Tanglewood)는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광대한 잔디밭과 숲 사이에 음악관을 지어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를 비롯한 다채로운 음악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음악관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통념을 깨고 엉성하게 판자를 이어 붙인 가건물 형태의 넓은 홀을 세우고 관객석의 뒷면을 잔디 광장으로 개방해서 잔디밭에 앉아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정장을 하고 음악회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잔디위에 펼쳐놓고 먹으며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파격의 음악회다. 최고 수준의 숲과 공원, 아스라이 부드럽게 펼쳐지는 먼 산들의 실루엣 선 위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빛과 조각구름들, 세계 정상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비빔문화의 전당인 듯하다.

 

 

 

 

탱글우드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여름 본거지가 된 것은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였던 테이팬(Tappan)의 가족이 기증한 탱글우드의 210에이커에 달하는 광활한 숲속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전곡 베토벤 곡으로 미국 여름 음악 페스티발을 시작하면서 탱글우드 음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38년에 부채꼴 모양의 5100석의 코우제비츠키 옥외 창고 연주회관 (Koussevitzky Music Shed)을 짓고 첫 연주회를 한 후로 연례적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계속 되었고, 마침내 탱글우드 숲은 음악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1986년에 인접한 땅을 추가하여 페스티발 광장이 40% 가량 넓어졌고, 1994년에 개장한 오자와 세이지홀과 번스타인 캠퍼스는 탱글우드 음악센터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탱글우드는 보스턴 심포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악 성악 연주회, 현대 음악 페스티발, 팝송과 재즈 공연등 풍부하고 독특한 음악을 엄선해서 선보임으로써 매년 30여만 명이 탱글우드를 찾아오게 한다.

 

 

 

올해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탱글우드 연례 연주회 75주년을 기념하여 최초의 연주회와 같이 전곡 베토벤 곡을 연주한다고 한다. 6월부터 시즌이 개막되는 탱글우드 숲 입구 앞의 너른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이 썰렁하게 주차되어 있다. 수많은 인파가 숲 광장에 들어차 음악을 즐기는 광경을 상상으로만 떠올리며 숲을 한 바퀴 돌아본다. 다람쥐가 들락거리며 뛰어다니는 잔디밭을 호젓하게 걸었다. 잔디 광장 여기저기 심어놓은 나무 중에 기묘하게 붙어서 공생하는 연리지 나무가 많다. tangle이란 단어의 뜻이 ‘얽히다’, ‘뒤엉키다’인데, 이 숲의 이름이 이 연리지 나무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했다. 특이하게 이곳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실내 연주홀은 일본이 자랑하는 음악가 오자와 세이지를 기념하여 이름을 붙였다. 잔디가 깔린 부드러운 구릉이 내려와 평지와 만나는 곳에 붉은 벽돌로 지은 단순하고 소박한 3층 건물이다. 마치 과거 중고등학교의 둥근 깡통천장을 한 허름한 강당같아 보인다. 유리창을 통하여 들여다보니 객석의 의자들도 딱딱하고 평범한 학교강당식 나무의자다. 오자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희사한 돈으로 이 아름다운 명소에 기념 연주홀을 지었으며 입구에는 기부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이제는 딸의 졸업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뉴욕주 빙햄턴 딸네 집으로 갈 차례다. 여행 시기를 잘못 선택했고 짧은 시간에 뉴잉글랜드를 최대한 많이 둘러보려는 욕심이 앞섰고 여행 준비도 철저하지 못한 탓에 많은 아쉬움이 있는 여정이었지만 오늘로 뉴잉글랜드 여행을 마쳐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세계 최강 미국의 뽀얀 속살을 들여다보며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풍요의 나라 미국의 겉모습과는 다른 미국의 정신과 근본을 조금은 엿볼 수 있어서 뿌듯한 여행이었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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