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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表

우르수아의 리더쉽

 

33명의 ‘나’를 버리고 ‘우리’로 뭉쳤다 … 그래서 살았다

 기적이란 희망의 또 다른 이름과 다름없다. 69일간의 사투 끝에 영영 못 볼 것만 같았던 지구 표면을 다시 밟은 33명의 칠레 광부가 입증해 보인, 보석처럼 빛나는 진리다. 천길 나락에 떨어져 갇힌 가운데서도 광부들은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했다. 극한의 상황을 다잡고 33명의 ‘나’를 ‘우리’로 조율해 낸 리더십도 빛이 났다.
8월 5일 오후 8시 반쯤(현지시간)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서 갑자기 갱도가 무너져 내려 그들은 700m 땅 밑에 갇혔다. 구조의 손길이 언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 밀폐된 공간 속에서 그들은 본능적 공포와 싸워야 했다. 더구나 물과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지하공간은 섭씨 33도에 이르는 고온에 습도가 90%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세계였다. 두 번째로 구조돼 나온 마리오 세풀베다가 “신과 악마와 함께 있었다”고 한 말처럼 그들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섰다. 다행히도 산호세 광산은 금·구리 광산이어서 탄광에서와 같은 메탄가스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광부들은 규율과 절제 있는 생활태도를 유지했다. 비상식량을 아끼기 위해 48시간마다 참치 두 숟갈과 우유 반 컵을 마시는 것으로 버티면서 구조대를 기다렸다. 자연광과의 고립으로 인해 생체시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지켰고 하루를 12시간으로 쪼개 2교대로 활동했다.

최연장자 마리오 고메스(63)의 경험과 축구코치 경력이 있는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54)의 지휘가 기약 없는 지하생활을 이끌어 나갔다. 고메스는 19세 어린 광부를 다독이는 한편 3인 1조로 역할을 분담하고 불침번까지 운영했다. 각자 경력과 특기를 살려 간호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광부는 동료들의 건강을 돌봤고, ‘오락반장’ 역할을 맡아 동료들의 심리적 안정을 이끌어 낸 사람도 있었다. 지하 갱도에 ‘작은 사회’가 구성된 것이다. 구조에 대비해 지하 갱도의 지도를 그리는 등 정보 수집 활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우르수아는 구조 순서를 짤 때도 아픈 사람을 먼저 내보내고 자신의 순서는 마지막으로 미루는 희생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위험한 작업을 함께하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규율과 동료애가 광부들을 하나로 묶어 줬다. 남미인 특유의 낙천적 기질도 광부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 원천이 됐다.
 
사고 발생 후 17일째, 구조대의 드릴 끝이 육중한 암반을 뚫고 들어왔다. 그들은 부랴부랴 쪽지에 메모를 써 매달았다. “33명, 전원 무사.” 생존자가 있으리란 확률이 점차 희박해져 가던 무렵 일어난 기적이었다. 칠레 구조대는 우선 암반에 구멍을 뚫고 ‘팔로마(비둘기)’라고 이름 붙여진 지름 12㎝의 캡슐에 물과 음식, 의약품과 옷가지 등 생필품을 내려보냈다.

가족과 광부들 간의 편지 교환도 이뤄졌고, 화상 카메라까지 들여보냄으로써 그들은 외부와의 격리 상태에서 벗어났다. 광부들의 생존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전달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묵주를 보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구조작업에 노하우와 장비, 우주인들이 먹는 특수 고칼로리의 비상식량 등을 제공했다. 광부들은 가족과 화상전화를 하고 반입된 소형 프로젝터로 축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불안감을 달래는 한편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지켜 나갔다.

구조 D-데이인 13일 광부들은 ‘희망’이라 이름 지어진 캠프에서 내려보낸 구조용 캡슐 ‘페닉스(불사조)’를 타고 귀환했다. 69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밝고 건강한 표정으로 나타나 전 세계인이 자신들에게 보낸 격려와 기대에 보답했다. 절망적인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진짜 불사조가 돼 나타난 광부들에게 지구촌은 박수를 보냈다. 그사이 태어난 매몰 광부 에리얼 티모나의 딸에겐 ‘에스페란사’(희망이란 뜻)란 이름이 붙여졌다.

예영준 기자 (이상 중앙일보 2010.10.15일자)

 

 
 

세계를 감동시킨 '우르수아(33인의 캡틴) 리더십'
최악 상황서도 규율을…
대피소 벽에 조직도 붙여 간호사·오락반장 등 정해
매일매일 '작은 승리'를…
정시에 기상·샤워하기… 소소한 것에 성취감을
나보다 동료 먼저…
마지막 구조자 자원 인터뷰도 동료 앞세워

"칠레 광부들의 삶은 무너져 내린 70만t의 암석 아래 눌려 있었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겐 운 좋게도 루이스 우르수아가 있었다."

칠레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산호세 광산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된 33명 광부의 지도자 역할을 한 우르수아를 "위대한 캡틴"이라고 불렀다. 산호세 광산에서 일한 지 두달밖에 되지 않은 '지도자 우르수아'는 극단적 공포와 마주 선 건장한 사내 33명을 이끌며 69일을 반목과 분쟁이 아닌 인내와 희망의 시간으로 바꾸어놓았다. '좋은 지도자, 나쁜 지도자(Good Boss, Bad Boss)'의 저자 밥 서튼 스탠퍼드대 경영과학과 교수는 학술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우르수아는 능력과 자비라는 최고의 리더가 되기 위한 자질을 모두 갖췄다"며 우르수아의 지도력을 '훌륭한 지도자의 다섯 가지 조건'에 빗대 분석했다.

①당신을 따르게 하라, 그러나 업무에 압도되지 않게

우르수아는 33명 광부들에게 명령을 따르도록 규율을 강조하면서도 업무에 압도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했다. 대피소 벽엔 그가 그린 복잡한 조직도가 붙어 있었다. '간호사''기록자''정신적 지주''오락반장' 등 업무를 부여하되 어느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게 했다.

②과할 정도의 담력을 보여라

'무너진 광산'이란 극도로 두려운 상황에 부닥친 광부들에겐 리더의 담력이 절실하다. 우르수아는 8월 말 지하에서 대통령과 연결된 첫 통화에서 극도로 절제된 침착함을 보였다.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사고 직전 지상으로 향한 광부들은 살아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구조되기 하루 전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할 때도 담담한 톤을 유지했다. "우리는 한 번도 계획하지도, 희망하지도 않았던 상황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뭐, 광부의 삶이 원래 그렇지요."

③작은 승리를 이어지게 하라

시간은 암담했다. 기약도 없었다. 그는 그 긴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작은 승리'들이 중요함을 알았다. 그는 '제시간에 일어나기''시간에 맞춰 샤워하기''함께 모여 기도하기'같이 소소한 규율을 통해 작은 성취감이 끊이지 않도록 광부들을 독려했다.

④권력에 중독돼 혜택을 독점하지 마라

우르수아는 마지막 구조자를 자처했다. 언론과 인터뷰할 때는 발언권을 독점하는 대신 가족에게 꼭 전할 말이 있는 동료를 참여시켰다. 가디언과 인터뷰 때 아내의 출산 예정일을 1주일 앞둔 리차르드 빌라로엘에게 메시지 전달 기회를 준 것이 그 예다. 광부들의 정돈된 생활을 이끌어낸 공을 자기 앞으로 돌리는 일도 없었다. 그는 가디언에 "광부들이 한마음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겸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⑤"오직 내가 당신들을 책임진다"

우르수아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신뢰를 주었다. 광부들이 지상 의료진의 끊임없는 건강 체크에 지쳐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우리에겐 할 일이 있으니, 의료팀 전화는 되도록 짧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와 함께했던 로빈손 마르케스는 "우르수아는 타고난 리더다. 전문지식과 침착함을 겸비했고, 조직원을 명백하게 사랑했다"고 말했다.
 
이상 조선일보 2010.10.15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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