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햄
우연히 묵게된 데드햄이란 동네는 보스턴에서 전철로 남쪽으로 약30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마을인데, 최근에 알고보니 매우 의미있는 역사가 깃들은 거룩한 도시였다. 1620-30년대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온 초기 퓨리턴들의 신앙 정신이 이주민들이 계속 증가하면서 점차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일단의 사람들이 이상적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정착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코네티컷의 뉴헤이븐,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덴스 등이 그런 곳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지역이 데드햄 정착지였다.
데드햄 정착촌 창설자들은 순수한 청교도 신앙과 이상향적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꿈을 꾸며 식민지 정부로부터 새 정착촌 건설 허가를 받아냈다. 이들은 신앙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로 결의하고 1636년 여름, 1차로 30여 가구가 보스턴 서남쪽 변두리 구릉지에 거의 200여 평방마일의 정착 토지를 불하받아 정착을 시작하고, 지역명을 데드햄(Dedham)이라고 정했다. 정착자들은 엄격한 자체 심사를 거쳐 선발되었고 앞으로의 공동체적 삶의 내용과 형식을 엄격히 규정한 서약서에 서명했다.
그들이 서약한 서약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신앙과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바탕으로 모든 약속과 계약이 이뤄져야 하며, 모든 주민은 이 서약에 복종한다는 일종의 신앙고백 형식으로 시작된다. 이와 같은 공동체적 가치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입주할 수 없으며, 입주했더라도 퇴출하는 폐쇄적 공동체를 규정했다. 그것은 신앙적 이상 공동체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토지는 공동 경작지, 산림, 목초지와 개인 명의의 주택용지와 텃밭으로 분배하고, 소유권 보다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삶을 지향했다. 이웃 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분쟁의 내용을 공개할 의무가 있으며, 타인들의 원만한 중재를 따르도록 함으로써 평화 유지와 양보의 정신을 살려나가게 했다. 즉 데드햄 정착촌은 하나님 중심의 이상향을 지향하는 폐쇄적, 집단적, 자치적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초기 정착촌에서는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는 신앙 집회가 매주 금요일마다 개인 집을 돌아가며 열렸다. 신앙 생활 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이해와 친목을 다지면서 서서히 교회 설립을 준비했다. 이들의 교회는 외부의 권위에 의지하여 설립하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의 신앙고백에 의거해서 설립하는 회중교회의 형태였다. 정착지 이주 후 거의 2년 만에 교회 설립 작업이 시작되었다. 설립위원을 선정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그들의 신앙 고백을 듣고 신앙 체험을 서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친 합심기도와 토론 끝에 설립위원 중 한 사람을 설교자로, 또 한 사람을 장로로 선출하여 교회를 출범시켰다.
유토피아적 데드햄 공동체는 거룩한 성도들의 마을로서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공동체로 50년 가까이 순항했다. 그러나 드높은 이상과 결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불완전성을 끝까지 벗어날 수는 없었으며, 초기 정착민들의 자녀들이 성장하고 세속화되면서 분열하고 마침내 이상의 날개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데드햄 정착촌의 실험과 시도는 다른 퓨리턴 마을에 비하여 오래 동안 성공했고 의미있는 것이었다. 이 거룩한 전통의 땅 데드햄에 묵게 된 것도 내겐 의미있는 것이었으나 너무 빠듯한 일정에 묶여 있어서 그 유산들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3일간 잠만 자고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