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레트 캐슬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가까운 이스트 해담에 있는 질레트 캐슬 주립공원에 잠깐 들렀다. 깊숙한 산 속에다 돌을 주워다 가공하지도 않고 이리저리 쌓아서 중세시대 풍의 독특한 요새와 성을 만들었다. 잡석을 연마하지 않고 그대로 쌓아 3층의 웅장한 성채를 건축하고 주변에 성곽을 쌓아 두르고 아치형 문까지 조성해 놓았다. 들쭉날쭉한 돌맹이만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지어진 성은 잘 다듬어 가꾼 정원에도 불구하고 곧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귀곡성 같았다. 더구나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라 더 그럴 것이다. 성곽의 한 쪽은 강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한 눈에 강과 그 너머 산과 평야를 조망할 수 있어서 우리나라의 행주산성 같은 지형지세를 갖추고 있다. 건물의 외부는 나무나 다른 자재를 쓰지 않고 오로지 자연석만으로 성채의 난간, 창틀, 계단, 아치 대문, 지붕까지 만든 노력과 집념이 돋보인다. 그러나 실내 인테리어는 산성 주변에서 직접 벌채한 참나무로 정교하게 꾸며졌다고 한다.
이번 여행 내내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미국 동부의 대부분의 국공립 관광시설은 현충일(Memorial Day, 5월 4째주 월요일)부터 시즌 오픈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레트 캐슬의 내부는 관람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질레트 캐슬 주립공원은 연극배우 겸 극작가였던 윌리엄 질레트(William Hooker Gillette, 1856-1937)가 직접 설계하고 감독하며 건설했다. 그는 일시 은퇴중이던 1914년부터 1919년 사이에 약 20명의 인부를 데리고 성채를 짓고 그 후 이 외딴 곳에서 살았다. 이곳은 코네티컷강변을 따라 연달아 솟은 ‘일곱자매(Seven Sisters)’라는 봉우리 중에서 일곱 번째 봉우리다. 24개의 방을 가진 성채는 47개의 문이 똑같이 생긴 것이 없을 정도로 그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다양하게 만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서둘러 보스턴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방값이 비싼 보스턴을 피해 보스턴 인근 데드햄의 힐튼호텔에서 3박을 묵으며 일대를 둘러볼 작정이다. 여기서 103마일, 2시간 거리다. 주간고속도로 95번을 타고 동북방향으로 달린다. 밤 9시가 되어 호텔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