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ENGLAND

에식스 빌리지

솔솔숲 2013. 12. 7. 17:21

 

코네티컷강 하구에 있는 미국 최고의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소문난 에식스 빌리지(Essex village)는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1,000개의 마을”에서 “완벽한 미국의 작은 마을”로 선정되었고, “미국 최고의 100대 마을”에서 선두를 차지했다고 자랑하는 마을이다.

 

5월5일 토요일 아침 비가 부실부실 내리는 가운데 하트포드의 주청사 인근 중심지를 대강 둘러보고 코네티컷강 하구에 있는 미국 최고의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소문난 에식스 빌리지(Essex village)로 일찌감치 출발했다.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1,000개의 마을”에서 “완벽한 미국의 작은 마을”로 선정되었고, “미국 최고의 100대 마을”에서 선두를 차지했다고 자랑하는 마을이다. 구글 지도상의 이동 거리는 39.5마일, 예상 소요시간 48분이다. 어제 최초의 운전이자 가장 까다로운 구간인 뉴욕시티에서 빠져나와 하트포드까지 바짝 긴장하며 네비게이션과 고속도로 통행 그리고 렌트카 운전의 적응 과정을 무사히 넘겼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지방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코네티컷주는 코네티컷강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며, 이 강은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 코네티컷강 하류지역에 숲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 여기 저기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영국식 전통을 유지하며 집집마다 정원을 가꾸어 놓아서 모두 눈에 넣고 사진으로 찍고 싶은 아담한 집들이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천당을 공간적으로 설명할 때 길과 집들이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었으며 천상의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천당의 모습을 설명하라고 하면 바로 이 코네티컷강 하류의 강변에 위치한 마을이 천당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름다운 경치와 모습은 천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데, 항상 즐겁고 행복한 천당의 콘텐츠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삶이란 것이 잔디 깍고 정원 가꾸고 요트 타고 노는 일 외에는 늘 적막하고 외롭고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 하구에 인접한 에식스 마을은 넓은 강과 구불구불 둘려쳐진 숲의 환상적인 경치 속에서 수많은 하얀 요트와 하얀 집들이 어울리며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찌보면 작아 보이기도 하는 앙증맞은 집들이 1700년대 하반부터 18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집이라는 준공년도 문패를 달고, 집집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가꾸어진 정원과 함께 자랑스러운 자태를 빛내고 있었다.

담을 둘러치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길 가에서 집들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되어있었으며, 주택과 상점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간판은 작았고, 심지어 은행마저도 귀엽고 작은 표지판만을 내걸고 있었다. 간판이 고객의 눈을 강제로 잡아 끌어가는 무례를 범하지 않고 건물 한 쪽에서 다소곳이 장식의 미를 더해 주고 있어서 편안했다.

에식시 마을은 긴 코네티컷강의 하구에서 대서양과 만나고 있는 천혜의 입지조건 때문에 17세기 후반부터 일찍이 무역을 시작하였으며, 1656년에 첫 부두가 건설되고 선박건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1776년 미국독립전쟁 당시 이곳 해이든 조선소(Hayden Shipyard)에서 최초의 미국 전함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호를 만들어 공급함으로써 미국독립전쟁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 그 대가로 영국으로부터 심대한 폭탄세례를 받아 큰 피해를 입었으며, 후세에 이 아름다운 마을을 폭격한 영국에게는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 최초의 대서양 횡단 화물선도 여기에서 만들었다. 이후로 조선산업이 더욱 발달하다가 목조선박이 퇴조하고 철선이 주종을 이루면서 이곳의 조선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요즘에는 군함이 아닌 요트와 같은 레져용 선박을 건조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미국 최초의 요트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의 요트 경기가 이곳에서 코네티컷의 주도인 하트포드까지 진행되었다.

조선산업으로 급발전을 한 이 작은 마을은 그 때문에 너무나 아픈 역사를 갖게 되었다. 독립전쟁 때 군함을 건조해서 진수시킨 죄로 영국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은 이미 기술한 바이다. 그 보다 더 아픈 역사는 1812년 발발한 미영 전쟁 중에 다시 영국의 집중 공격을 받은 것이다. 1814년 영국 해군은 코네티컷강 하구에 전함을 건조하는 조선소가 있던 에식스 마을을 공격하여 계류 중이던 함정 28척을 불태웠다. 마을 사람들은 기세 등등 상륙한 영국군에 항복하고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적군에 부역을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게 되었을 때 이 마을은 비겁한 반역자 마을로 미국 전역으로부터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하는 수모를 견디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들은 강박물관에 자기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소상히 기록하여 전시함으로써 반성하고 있다. 심지어 전국에서 쏟아진 신문 지면의 비난 기사들을 모두 모아 벽면에 전시함으로써 잘못을 사죄하고 있다.

 

 

<그리스월드(Griswold)> 1776년 독립전쟁 때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안에는 이곳에서 건조한 듯한 수많은 배들의 빛바랜 크고 작은 사진 액자들이 시커멓게 그을은 벽에 가득 매달려서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보여주고 있었다.

 

어쨌든 조선소가 있는 동네라면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공장지대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곳의 거리는 산뜻하고 고요한 기품을 갖추고 있다. 에식스 마을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곳은 그리스월드(Griswold)라는 호텔 겸 식당인데, 1776년 독립전쟁 때 문을 열어 지금까지 식당을 하고 있는 곳으로 현지 주민들은 ‘더 그리스(The Gris)’라고 부른다. 250년의 역사를 지닌 식당으로서 맛의 권위를 자랑한다. 특히 이 집에서 일요일 점심에는 ‘사냥꾼의 아침(Hunt Breakfast)’이라는 영국식 음식 뷔페를 내어 놓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단다. 이는 1812년 전쟁 때 영국 군인들이 에식스에 주둔하면서 먹던 영국식 식사로서 양과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나 같은 나그네는 헌트 브렉퍼스트를 먹어보기 위하여 요일을 맞추어 다시 찾아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점심식사로 영국식 피시앤칩(Fish & Chips)을 시켜놓고 250년의 관록의 때가 곳곳에 스며있는 식당에서 감회에 젖었다. 식당 안에는 이곳에서 건조한 듯한 수많은 배들의 빛바랜 크고 작은 사진 액자들이 시커멓게 그을은 벽에 가득 매달려서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보여주고 있었다.

정지된 시간인 마냥 한산한 마을은 17~18세기의 마을 정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흘러간 궤적을 모아 마을 끝 부둣가에 서 있는 소박한 창고같은 건물에 강 박물관을 차려놓고 마을의 역사를 전시해 놓고 있다. 이른 봄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가운데 피는 꽃들도 흰색, 집들도 흰색, 도크에 서 있는 요트들도 흰색, 약간 흐린 하늘과 하늘이 비친 강물도 희어서 마음도 하얗게 세탁이 된다.

 

 

에식스 항공사진

www.essexct.gov에서 전재

 

에식스 외에도 코네티컷강을 따라 올라가며 아이보리톤(Ivoryton), 체스터(Chester), 이스트 해담(East Haddam) 등의 예쁜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모두들 강과 숲과 정원과 집이 어울려 환상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차를 몰아 천천히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들여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집집이 모두 생생한 조경 교과서라고 할 만 했다. 아름다운 마을에서 며칠 묵으며 센터부룩과 세이부룩까지 둘러보고 보트도 타면서 컨트리풍에 흠뻑 젖어보면 좋으련만, 가야할 곳은 많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곳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한나절 나들이로 마치고 보스톤을 향해 출발했다.